고조된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와 미국의 강력한 긴축 시그널에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2008년 금융위기 수준으로 추락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이 국내 주식을 팔아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셀 코리아’ 현상이 강해지면서 국내 증시도 급락했다. 한국경제가 외환·금융시장 불안과 고물가, 경기침체를 동반한 초대형 복합 위기에 진입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3일 원·달러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4.5원 오른 달러당 1301.8원에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를 찍은 것은 2009년 7월 13일(1315.0원)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강(强)달러 현상은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엔화 약세, 주요국 긴축 강화 등 영향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이날 코스피는 전날보다 1.22% 내린 2314.32로, 코스닥은 4.36% 급락한 714.38로 거래를 마쳤다.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2020년 11월 2일, 2020년 6월 15일 이후 최저점으로 떨어졌다. 원화 가치 하락에 따른 환손실을 피하기 위한 외국인의 매도세가 지속된 영향이 컸다.
국내 외국인 투자금의 유출 압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5월 국내 외국인 주식 투자금은 95억3000만 달러(약 12조4000억원) 빠져나갔다. 6월 들어서도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5조6000억원가량 주식을 팔아치운 것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시장 불안정성 확대는 미국의 긴축 가속화와 글로벌 경기침체 위기에서 비롯됐다.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은 22일(현지시간) 상원 은행위원회에 출석해 “(경기침체는) 확실히 가능성이 있다”면서 “경기침체 가능성이 존재하며 연착륙은 매우 도전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또 “우리는 물가상승률을 2%대로 돌려놔야 한다”면서 추가 금리 인상 방침을 거듭 밝혔다.
금융당국은 시장 불안정성을 낮추는 데 안간힘을 쏟고 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정부는 환율 상승에 따른 시장 불안 등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 시장 내 수급 불균형을 완화하기 위한 정책적 노력도 병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금융연구원장 등 연구기관장들과의 간담회에서 최근 경제 상황과 관련해 “그야말로 미증유의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위기)이 밀려올 수 있는 것”이라며 금융 리스크에 적극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