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외따로이 빛나는 것이 있다

입력 2022-06-24 04:05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을 다녀왔다. 벌써 두 번째다. 전주에 있는 시집 특화 도서관이다. 스무 평이 조금 넘는 작은 도서관에는 시집만이 꽂혀 있다. 여행자에게는 문득 들른 도서관에서 한 권의 책을 읽기란 다소 무리다. 하지만 이곳 도서관에선 한 편의 시, 아니 한 권의 시집을 잘 읽을 수 있다.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도서관, 아무 데나 기대어 읽으면 내 안에 시가 흘러들어온다.

이 도서관을 특별히 마음에 아끼게 된 것은 숲의 풍경이 좋아서다. 산에 콕 박혀 있는 듯한 공간에는 굵은 몸을 비트는 가지들과 초록색 나뭇잎을 실컷 볼 수 있다. 고개를 빼고 내려다보면 호수도 있다. 도서관을 나와 호숫가를 걷다 보면 시심이 절로 일 것 같다.

산림청이 관리하는 산에 도서관을 짓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건물 짓는다고 숲속 나무를 마구 벨 수도, 숲을 오염시킬 화장실을 만들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명예관장인 김용택 시인은 전한다. “절대로 숲을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다던가, 그래서 이렇게 작고 아름답게 되었지.”

작아서 아름다운 학산숲속시집도서관은 작년에 문을 열었다. 시인을 초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자신이 읽은 시를 필사해 남겨놓는 프로그램도 있다. 내가 도서관에 머문 동안 유희경 시인과 오은 시인이 들렀다. 시 가까이 몸을 대고 나무들과 함께 호흡하는 공간이 있다는 게 놀랍다. 시옷으로 시작한 말 중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시’와 ‘숲’을 ‘산책’하며 얻는 기운은 예사롭지 않다.

마침 여행길에 읽은 책은 이갑수 시인의 ‘나무와 돌과 어떤 것’이었다. 시인은 식물학을 전공했으나 식물에 대해 잘 모르고, 나무와 꽃을 좋아해 자주 기웃거렸지만 뒤늦게 알게 됐을 뿐 오랫동안 무심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시적인 문장으로 식물 이야기를 기록한다.

“나무의 잎자루는 왜 이렇게 가느다랗고 잘록할까. 나무는 공들여 완성한, 제 몸의 일부인 잎을 왜 이리도 불안한 상태로 놓이게 한 것일까. 식물학자에 따르면 그것은 잎이 바람에 잘 흔들리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잎이 광합성을 하면서 내뱉는 산소가 멀리 잘 퍼지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능선에서 길게 불어오는 거친 바람을 어르고 달래어 순한 바람으로 만들어 세상으로 내려보내는 잎들의 능력.” 책에서 발견한 대목이 좋아 입술로 읽으며 중얼거렸다. 나뭇잎이 잘 흔들려야 세상이 순해지는구나. 학산숲속시집도서관에서 나뭇잎 대신 시를 대입해봤다.

시는 왜 이렇게 작게 말하는가. 큰 목소리로 주장하지 않는 시는 세상의 거친 말들을 어르고 달래서 사람의 마음을 진실 쪽으로 이끈다. 시들은 도도하지 않아서 힘을 갖는다. 자꾸 지워질 듯 간절한 시구들이 마음속 소용돌이를 부른다. 시인은 나뭇잎과 사람의 운명을 얘기한다. “물에 젖고 흙에 묻은 잎사귀 한 장을 주워 손바닥에 올려놓고 생각해본다.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어디 낙엽만의 운명일까. 낙하하는 나뭇잎을 보다가, 낙엽을 태우다가, 그러다가 문득 시심에 젖기도 하는 우리들도 마찬가지이다. 보라, 둥근 열매처럼 얼굴을 받쳐 놓은 잘록한 모가지 아래 더욱더 잘록한 사람의 발목!”

잘록한 모가지와 더 잘록한 발목을 떠올린다. 무거운 머리를 받들고 커다란 몸뚱이를 옮기는 발목을 생각한다. 나뭇잎이 광합성하며 바람을 흔들며 산소를 멀리 보내듯 사람은 발을 움직여 세상에서 배우고 더 순한 마음을 얻기도 한다. 이런 발걸음으로 도서관에 이른다면, 이날의 광합성은 성공이다. 햇빛처럼 따뜻하고 강렬한 시들로 우리는 무엇이든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시를 읽는 것이 삶으로 이어진다면 분명히 마음이 달라진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선과 악을 가르쳐주지는 않으나 인생에서 성숙함과 미성숙함을 알게 하는 것이 시라고 말하는 이성복 시인의 목소리도 떠올린다. 여행길에서 시를 읽는다는 것, 단도직입으로 나 자신에게 말을 거는 일이다. 학산숲속시집도서관 같은 곳이 있어서, 외따로이 떨어진 숲과 시를 맞이해 여행자의 마음은 환해졌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