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말도, 보고 싶었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깊어지는 마음을 행동으로 직접 표현하지도 않는다. 은근한 눈빛과 표정, 나직이 돌려 말하는 목소리, 소용돌이치는 파도 속에서 관객들은 격렬한 감정이 밀려오는 것을 느낀다. 이토록 교묘하고 정교한 연출이 있을까.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난다. 서래를 용의선상에 두고 잠복과 심문을 이어가던 해준은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낀다. 서래와 해준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이 흐른다. 영화는 수사극에서 멜로극으로 전환되고 모든 수사 과정은 연애 과정으로 치환된다.
영화 ‘헤어질 결심’ 시사회와 기자간담회가 21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진행됐다. 전작들에서 강렬한 미장센을 선보인 박찬욱 감독이 자극적인 요소를 최대한 아낀 수사멜로극을 시도했다. 138분간 진행되는 사건 수사와 표현을 자제하는 ‘어른 로맨스’ 안에 조금은 가벼운 유머도 담겼다.
이번 영화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박 감독은 “젊을 때는 자신의 감정을 다 드러내고 표현해 가면서 살고, 그래도 된다. 나이 든다는 걸 다르게 표현하자면 솔직해지기 어려워지는 것”이라며 “상황과 처지에 따라 이것저것 고려할 게 많고 참을 것도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게 나이 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형편에 놓인 두 사람이 어떻게 하면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서 자기감정을 상대방에게 전달할까, 참기 힘든 감정을 어떻게 하면 상대에게 들키지 않고 감출까를 고민하는 이야기”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박해일과 탕웨이는 두 인물의 섬세한 감정을 노련하게 표현해냈다. 박해일은 “감독님이 작품을 제안하면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며 “수사극 안에서 형사인 해준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를 대하며 솔직한 마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가짜 감정을 드러내고 그녀의 의심, 진심에 대한 부분을 파악하기 위해 감정을 연출해야 했다”고 말했다.
탕웨이는 한국어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인간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감정을 밖으로 표현할지 안으로 걸어 들어가 삼킬지 결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서래의 힘든 삶 속에선 모든 걸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없고 오히려 숨길수록 더 크게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감독님의 연출이 교묘하게도 연기와 맞아들어갔다”고 돌이켰다. 이어 “사실 한국어를 전혀 못하기 때문에 모든 대사를 외워서 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 과정에서 표정을 통한, 소리 없는 감정 표현이 더 잘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영화는 탁월한 미장센, 스릴과 멜로를 넘나드는 배우들의 연기, 수사극과 로맨스의 영리한 조화를 보여준다. 관객들은 겉으로 표현되는 감정과 그렇지 않은 감정을 생각하게 된다. 해준의 후배 형사로 등장하는 고경표 김신영 등 조연들의 열연을 보는 재미도 있다. 29일 개봉.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