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은 한민족 역사상 가장 비참한 전쟁이었다. 전쟁으로 수백만이 죽고 수십만의 고아와 과부가 생겼고, 수많은 건물이 파괴됐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역사는 지속했다. 그중 하나가 월드비전을 설립한 밥 피어스 이야기다.
피어스를 알기 위해서는 그가 살고 있던 당시의 미국 기독교를 이해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주류 기독교는 진보주의적인 성향을 지녔다. 이들은 당시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와 같이 공산주의와도 협력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보수주의 기독교는 공산주의를 타협하기 힘든 반기독교적인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공산주의 국가 소련과 협력해 전쟁을 이끌었던 미국은 2차 대전이 끝난 다음 소련이 전 세계를 공산화하려는 것을 보고 소련과 대립하게 됐다. 이것이 소위 냉전체제였다. 진보주의 교회는 아직도 소련과 협력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여기와 비교하면 보수·복음주의 교회는 미국은 공산주의와 맞서 자유 세계를 지키고, 세계를 복음화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대다수 미국인은 공산주의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 역사의 실상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에서 새롭게 출현한 선교단체가 바로 YFC(Youth For Christ·십대선교회)였다. YFC는 기독교의 전통적인 입장은 지켜야 하지만 새로운 시대에 맞춰 새로운 방법으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단체가 내세운 인물이 바로 젊은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과 피어스였다. 이들은 하나님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에 승리를 주신 것은 공산주의를 막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YFC는 이를 위해 그레이엄은 유럽에, 피어스는 중국에 파견했다.
피어스는 1947년 중국에 왔다. 그는 중국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수많은 선교사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묵묵하게 일하고 있는 것을 봤다. 피어스는 이들의 수고를 미국에 알리고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을 위해 피어스가 생각한 것이 바로 영상이었다. 백 마디 말보다 영상 한 장면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 그는 중국 기독교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미국에 알렸다. 이는 엄청난 효과를 거뒀다. 1948년 피어스는 다시 중국으로 가서 많은 선교사를 도왔다. 그는 중국이 공산주의의 위협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 피어스는 미국이 공산주의를 막고 기독교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중국은 1949년 공산화됐다.
피어스는 1949년 한 해를 낙심한 가운데 보냈다. 이 당시 그는 친구였던 동양선교회 선교사 엘마 길보른으로부터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당시 길보른은 한경직 목사 등과 함께 공산주의를 막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전국적인 구국 전도 집회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듬해 3월 피어스는 한국에 들어와 약 9주간에 걸쳐 대구 부산 대전 서울 인천 등지를 순회하면서 대대적인 전도 집회를 열었다. 그의 메시지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공산주의의 위협에서 한국을 지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해 영혼을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도 집회를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간 피어스는 한국의 상황을 미국 기독교인들에게 알렸다. 피어스가 한국전쟁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6월 24일 토요일 저녁 와이오나에서 열린 동양선교회 대회에 참가하고 있을 때였다. 그는 곧바로 자기 친구 그레이엄에게 이 소식을 알렸고, 그는 트루먼에게 신앙을 찾아 월남한 한국 기독교인들을 내버려서는 안 된다고 전보를 쳤다. 그레이엄은 당시 미국에서 떠오르는 젊은 기독교 지도자였다, 그레이엄은 7월 14일 트루먼 대통령을 직접 만나 미국은 한국과 한국 기독교인들을 도와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피어스는 중국에서처럼 한국에서도 ‘38선’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찍었다. 이것은 전쟁 직전 한국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 이 다큐멘터리는 북한에서 월남한 2만명의 피란민 캠프를 보여주면서 한 살 미만의 수많은 어린이가 죽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선교사들은 이들을 돕고 있으며 아이들은 “부모가 나를 포기했을 때 주께서 맡아 주셨다”고 말했다. 이 영상은 수많은 미국인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한국의 고아를 위해 헌금하도록 이끌었다.
이 필름을 통해 많은 사람이 한국에 관심을 두게 되자 피어스는 1950년 9월 22일 미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월드비전을 창립했다. 월드비전이란 이름은 “환상(비전)이 없는 나라는 망한다”는 잠언(29:18) 말씀에 근거한 것이다.
피어스는 월드비전을 만든 다음 곧바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한국에서 한 목사나 길보른 같은 선교사들과 함께 한국전쟁 내내 한국인의 고통을 함께 나눴다. 한 목사는 피어스를 하나님의 마음으로 한국인을 사랑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월드비전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자선단체가 됐다.
서울신대·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