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물가 상승률이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4.7%)을 넘어서는 고물가 국면이 연말까지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 이창용 총재도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적절히 제어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상황이 고착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은은 21일 발표한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보고서’에서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8년 수준을 넘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4.5%로 1.4% 포인트 높였던 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다시 올려 잡은 셈이다. 이 총재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연초 3%대 중반을 기록하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불과 두 달 만에 5%를 상당 폭 상회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면서 “앞으로 국내 소비자물가 오름세는 지난달 전망 경로(상승률 연 4.5%)를 상회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그는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율)이 물가 관리 목표인 2%를 넘어 3%를 상회하고 장기 기대인플레이션도 2% 수준까지 상승했다”면서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해질 경우 물가가 임금을 자극하고 이는 다시 물가상승으로 이어지는 임금·물가간 상호작용(feedback)이 강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은 하반기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상반기보다 상승 폭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당장 6월 소비자물가 상승률부터 5월(5.4%)보다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로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곡물 공급 등이 차질을 빚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공급망 차질 등 해외 요인이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미친 영향은 56.2%로 파악됐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식량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커졌다.
여기에 사회적 거리두기 해제 탓에 물건을 사는 수요가 증가한 것도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일반 국민에게 타격이 큰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 역시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갈 것으로 분석됐다. 지난 5월 가공식품 가격 상승률(7.6%)은 2012년 1월(7.9%)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같은 달 외식물가 상승률(7.4%)도 1998년 3월(7.6%) 이후 가장 높았다.
한은은 물가를 잡기 위한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이 총재는 빅스텝(기준금리 0.5% 포인트 인상) 단행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 질문에 “물가 하나만 보고 (인상 폭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물가와 환율, 가계의 이자부담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겠다”고 답했다.
이 총재는 향후 경기 전망과 관련해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 중국의 성장 둔화, 주요국 금리인상 가속 등으로 연말로 갈수록 글로벌 경기의 하방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올해 성장률이 2%(잠재성장률) 이상 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고 판단한다”면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 가능성을 크지 않다고 봤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