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상에서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공무원 이대준씨 사건과 관련해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이 이씨의 실종 사실을 처음 보고받고 현장 분석관들에게 월북 가능성을 잘 검토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내린 것으로 드러났다. 사건 초기부터 군 당국이 월북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색을 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2020년 9월 24일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록에 따르면 당시 서욱 장관은 ‘첫 지시가 무엇이었냐’는 강대식 국민의힘 의원의 질의에 “‘월북 가능성이 있는지 여부를 잘 봐야 된다’ 이렇게 지침을 줬다”며 “그다음 우리 분석관들은 현장에 있는 인원들하고 확인하면서 ‘그(월북) 가능성보다는 아마 실족이나 이런 것일 수도 있다’ 이런 얘기들과 함께 (보고했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놓고 탐색 활동을 하자’ 이렇게 지시하고 보고받고 했다”고 답변했다.
서 전 장관은 언제 첫 보고를 받았냐는 질문에는 “어업지도선 선원 1명이 실종됐다는 보고부터 받고 있었다”며 “21일 오후 2시쯤인 것으로 기억한다”고 답했다. 사건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된 시점에 월북 여부를 살피라는 지침을 내린 것이다.
이에 대해 신종우 한국국방안보포럼 전문연구위원은 “부적절한 지시라고 본다”며 “실종 보고를 받은 직후라면 가장 먼저 나와야 할 지시는 당연히 수색·구조 작업이다. 북한과 접촉해서라도 국민을 안전하게 구할 생각을 해야지, 월북 의사가 있는지가 급한가”라고 반문했다.
당시 국방위 회의에서 서 전 장관은 이씨가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부유물을 갖고 있었던 점, 신발이 가지런히 놓였고 월북 의사를 표명한 정황이 포착된 점 등 실종 이후 추가로 얻은 정보를 월북 판단의 근거로 제시했다. ‘살기 위해 월북 의사를 밝힐 수도 있는 것 아닌가’라는 물음에 서 전 장관은 “그럴 수도 있다고 보는데, 현재까지 내린 결론은 월북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답했다.
국민의힘의 이 사건 진상조사 태스크포스(TF) 단장을 맡은 하태경 의원은 2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국방위 회의 전날인 2020년 9월 23일 새벽 1시에 열린 관계장관 회의에서 일종의 수사 가이드라인이 전파됐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 의원은 “정부가 당시 월북 의혹을 여러 가능성 중 하나로 놓고 보다가 갑자기 결론으로 내리게 된 계기가 있을 것”이라며 “이씨 사망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 관계장관 회의에서 ‘월북 프레임’으로 가자는 결정이 난 것 같다”고 주장했다.
특히 하 의원은 국방위 회의 종료 후 비공개 긴급 현안보고에서 서 전 장관의 태도가 이상했다고 지적했다. 하 의원은 “비공개 회의에서 서 전 장관이 ‘100% 월북이다’는 식으로 말했다”며 “평소 스타일과 달리 단정적으로 말하길래 ‘이게 뭔가 있구나’ 싶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하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TF 첫 회의를 열고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이 사건 관련 정보를 다 공개하고, 공개 못하는 건 여야 의원들 간에 (열람할 것을) 제안한다”며 “창구를 정해 정보 공개 관련 협상을 당장 시작하자”고 촉구했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여당의 대통령기록물 열람 요구에 대해 “정식으로 요청하면 피하지 않겠다”면서도 “정략적 의도가 다 보이지 않나. (여당의 행동은) 다 부메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우진 신용일 손재호 기자 uz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