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A씨(33)는 최근 들어서 점심시간이 되면 편의점으로 간다. 지난 20일에 A씨의 점심 메뉴는 컵라면, 삼각김밥, 샌드위치와 달걀 2알이었다. 모두 합쳐 6800원을 결제했다. A씨는 “회사 근처 식당을 가면 막국수 한 그릇에 닭갈비 4점을 주는데 9900원을 받는다. 어쩔 수 없이 먹기는 했는데 터무니없는 물가에 화가 나더라”며 “요즘은 편의점에서 캐시백 등으로 이것저것 할인을 받아서 점심을 해결하는 게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치솟는 물가가 ‘런치플레이션(점심을 뜻하는 런치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을 부르고 있다. 점심 밥값이 1만원을 넘어가자 식비를 아끼기 위해 편의점을 찾는 직장인들이 늘었다. 편의점 도시락 매출은 껑충 뛰었다. 회사에서 주는 식권으로 편의점을 찾는 이들도 증가했다. 식권으로 식당에서 점심 한 끼 해결이 어려워서다.
21일 CU에 따르면 이달 1~19일 도시락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9.6%나 상승했다. 지역별로 나누면 사무실이 밀집한 서울 역삼·광화문·여의도의 매출 증가율은 35.1%, 대학가 매출 증가율은 42.9%나 됐다. CU 관계자는 “주요 외식품목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직장인들이 비교적 부담이 적은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편의점 도시락이 직장인들의 대안으로 떠올랐다”고 설명했다.
물가의 고공비행에 맞춰 편의점 도시락의 매출 증가 폭도 커지고 있다. 1월만 해도 주요 편의점의 도시락 매출 증가율은 10%대에 그쳤지만, 이달 들어 최고 49%를 기록했다. 이마트24 관계자는 “4월부터 도시락 매출 증가율이 40%대로 올라왔다. 물가 인상과 함께 거리두기가 해제되면서 밖으로 나온 소비자들이 늘어난 영향”이라고 진단했다.
각 회사에서 복지혜택의 하나로 지급하는 식권을 편의점에서 쓰는 사례도 잦아졌다. 지난달 1~15일에 CU 편의점에서 회사 식권을 사용한 소비자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4.1%나 증가했다. 장당 8000~9000원인 식권으로는 1만원을 넘어가는 식당 밥값을 따라잡지 못해서다. 식권만으로 부족해 차액을 결제하는 일이 벌어지자 편의점을 발길을 돌리는 것이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정보 종합포털 참가격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의 주요 외식 메뉴 평균 가격은 지난 1월보다 100~600원가량 올랐다. 냉면 1인분 가격은 1만269원으로 5개월 만에 4.7%, 자장면은 6223원으로 7.8%, 칼국수는 8269원으로 6.4% 상승했다. 참가격의 표시가격은 외곽 식당까지 조사하기 때문에 체감보다 낮게 나타난다.
대학의 학생식당 상황도 다르지 않다. 올해 초에 서울 소재 주요 대학의 구내식당 메뉴 가격은 3000~5000원가량 올랐다. 교내 학생식당들은 가격을 20~30%가량 인상했다. 저가 외식품목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노량진 컵밥도 올해 초 가격이 3000원에서 3500원으로 올랐다.
‘런치플레이션’은 자취를 감췄던 2000원대 도시락도 소환했다. CU는 4월에 도시락 2종을 2900원에 선보였다. 편의점 업계에서 판매하는 도시락 중 최저가다. 지난해 기준으로 편의점 도시락의 평균 가격은 4500원이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는 “가격에서 장점이 있을 뿐만 아니라 품질 신뢰도가 크게 향상된 점도 편의점 도시락을 한 끼 식사로 선택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주요 요인”이라고 말했다.
정신영 기자 spiri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