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자고 걷고 옷을 입고 게임을 하는 일상 하나하나가 돈으로 변신하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최근 IT업계뿐 아니라 금융권, 바이오기업마저 개인의 특정 활동에 디지털 화폐 등으로 대가를 지급하는 ‘X2E(X to earn) 서비스’에 주목하고 있다. X2E는 돈 버는 게임을 의미하는 ‘P2E(play to earn)’에서 파생했다. 금전 보상을 제공하는 온라인 서비스를 뜻한다. 광고를 직접 보거나 소셜미디어에 콘텐츠를 공유하면서 포인트를 쌓는 서비스가 있었는데, 이와 비슷한 개념이다.
하지만 기존 보상형 서비스와 달리 X2E에는 블록체인이 접목됐다. 이용자에게 보상으로 암호화폐(가상화폐)나 대체불가능토큰(NFT)을 보상으로 주는 식이다. 블록체인 플랫폼을 중심으로 여러 서비스를 연결하면 한 서비스에서 획득한 보상이 생태계 안의 다른 서비스와 이어지면서 ‘재화’로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생태계 안에서 모은 자산을 활용하는 또 다른 서비스로 확장도 가능하다.
이론적으로는 메타버스를 하나의 플랫폼으로 두고 블록체인으로 여러 X2E 서비스를 연결하면 거대한 시장을 구성할 수도 있다. 게임사는 물론이고 IT기업, 은행, 카드사 등이 X2E에 초점을 맞추고 범위를 점점 넓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 P2E의 경우 게임 플레이어가 특정 활동을 수행하면 리워드를 준다. 넷마블은 P2E로 블록체인 사업을 이끌겠다는 전략을 그린다. ‘A3: 스틸 얼라이브’를 지난해 해외시장에 선보였고, ‘제2의 나라: 크로스 월드’도 해외에서 출시했다. 게임을 하며 얻은 아이템을 암호화폐로 바꾸고 이를 거래하는 방식이다. 제2의 나라에서는 게임에 매일 접속하거나 게임 내 특정 장소를 탐험하면 암호화폐로 교환 가능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위메이드도 암호화폐 플랫폼 ‘위믹스 3.0’을 선보였고, 컴투스도 신작 ‘서머너즈 워: 크로니클’을 하반기에 P2E 버전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또한 NFT 운동화를 구매해 걷고 뛰기 등으로 운동량을 채우면 가상자산을 얻는 구조인 ‘M2E(Move to Earn)’는 한국 이용자들에게 큰 관심을 받고 있다. 호주의 스테픈(Stepn)은 대표적인 M2E이다. 지난 1월부터 한국에서도 서비스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 내 신발을 구입하거나 대여한 뒤 야외를 걸으면 암호화폐가 채굴된다. 한국판 스테픈인 ‘슈퍼워크’도 민팅(Minting·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메디블록도 이용자가 걷기 등의 건강 행위를 하면 코인을 주는 ‘코인워크’를 출시했다.
개인의 수면 정보나 식단, 건강 정보를 활용한 X2E도 있다. S2E(Sleep to Earn)를 표방하는 ‘슬립퓨처’는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하는 수면 웰니스(웰빙+피트니스) 프로젝트다. 수면 품질을 측정한 데이터를 모아 암호화폐를 받는다. 수면의 질이 좋을수록 점수는 높아지고, 보상받는 수준도 커진다. 받은 암호화폐로 수면 관련 제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다. 음식 사진을 촬영해 올리며 캐릭터를 키우는 E2E(Eat to Earn) 서비스, 음악을 듣고 보상받는 갈라게임즈의 L2E(Listen), 여행 스타트업 트립비토즈의 T2E(Travel) 같은 이색 서비스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X2E는 젊은 세대에서 추구하는 ‘리추얼(Ritual)’ 흐름과 만나 시너지를 낸다. 리추얼은 ‘규칙적으로 행하는 의식·의례’를 뜻한다. ‘욜로(YOLO)’를 외치던 청년층은 건강하고 규칙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리추얼 라이프’로 지향점을 바꾸고 있다. 일찍 일어나기(미라클 모닝), 건강보조식품 챙겨 먹기, 독서하기, 운동하기를 매일 실천하는 젊은 세대가 X2E의 표적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에선 시장 확장에 걸림돌이 많다. 우선, 사행성 조장을 이유로 게임 내 재화의 현금화를 허용하지 않는다. P2E는 서비스되지 않을뿐더러 다른 X2E 서비스 역시 오락적 요소가 조금이라도 있다면 게임물로 분류돼 규제에 가로막힐 수 있다. 스테픈 역시 게임물로 분류되면서 법 위반 논란에 휩싸였었다. 그나마 게임물관리위원회(게임위)가 스테픈의 경우 운동 보조 특성이 강하다고 판단하면서 한국에서 서비스가 막히진 않았다.
X2E가 장기적으로 서비스를 이어갈지 미지수라는 우려도 나온다. 지급받은 화폐가 금전적 가치를 지니려면 이용자 수가 유지돼야 한다. 이들이 실제로 재화를 사들여야 서비스의 뿌리가 흔들리지 않는 구조다. 여기에다 암호화폐 시장의 상황에 취약하다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최근의 암호화폐 폭락은 P2E로도 확산했다. 게임사가 발행한 암호화폐 가격은 20~30% 추락했다. 게임 속 경제가 붕괴하면서 이용자들도 대거 이탈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이용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선택한 본질적인 서비스를 유지하면서도 지속해서 경제적 활동을 보장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만 X2E 산업도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