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강타한 인플레이션 공포에 국내 증시가 요동치고 있다. 최악의 장에 진입했다는 전망이 제기되는 현 증시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없을까.
지난 14일 서울 영등포구 키움파이낸스스퀘어빌딩 사무실에서 만난 박세중 키움투자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장은 “과거 2년은 펜데믹으로 유동성이 넘치는 가운데 탐욕이 시장을 지배했다면, 올해는 정상화 국면 속에서 두려움이 지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대외 불확실성이 높아진 만큼 단기적으로 시장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6월을 포함한 올여름 중에는 바닥이 확인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어느 때보다 객관적 분석을 바탕으로 냉정하게 투자 판단을 해야 한다.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조 단위 투자금을 운용하는 박 본부장은 증권업계 숨은 고수로 알려져 있다. 17년간 펀드 매니저로 일한 그의 무기는 역발상 투자다. 다수가 두려움에 빠질 때 기회를 찾고, 탐욕에 취할 때 이익을 취하는 전략이다.
-최근 국내 증시가 맥을 못 추는데.
“전문가들에게도 충격은 예상보다 컸다. 인플레이션 영향이 지난 3월 전후로 피크(정점)를 찍은 줄 알았는데 예측이 빗나갔다. 다만 미국의 통화 긴축으로 인한 쇼크가 추가적으로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 발표 이후 시장에서는 추가적인 ‘자이언트스텝’(기준금리 0.75% 포인트 인상), ‘빅스텝’(0.5% 포인트 인상)을 통한 연말 3% 이상의 기준금리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2023년에 있을 것으로 예상됐던 상황이 1년 정도 당겨졌고, 그 고점도 좀 더 올라갔다. 다만 이런 부정적 요소는 이미 상당 부분 시장 금리에 반영됐기 때문에 국내 증시가 더 큰 충격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우크라이나 사태뿐 아니라 중국의 봉쇄 조치 등 변수도 많은데.
“현재는 국제유가 등 여러 변수가 많지만 가을쯤엔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한 불확실성이 걷힐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경제 규모가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중국의 락다운(봉쇄 조치)은 오는 10월 당대회까지는 부분적이나마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기업들이 이미 봉쇄 조치를 어느 정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어 그 여파는 지난 3~4월보다는 덜할 것이다.”
-증시는 언제 바닥을 찍을 것 같은지.
“8월까지는 가봐야 바닥을 확인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을로 넘어가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이 돌아오고 증시가 꿈틀댈 가능성이 있다. 가을이 되면 ‘그때(6~8월)가 바닥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 것으로 보인다.”
-주식 투자에선 손 뗄 때라는 얘기도 많다.
“팬데믹 이후의 금리 인상기는 참으로 고통스러운 시기이다. 하지만 더 멀리 보면 그렇게 절망할 정도까지는 아니다.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붕괴 때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떠올려 보면 좋을 것 같다. 당시 ‘베어마켓(약세장)’을 보면 그 여파가 수년간 이어지면서 금융시장이 회복하기까지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데 지금 위기는 몇 년짜리 경기 침체로까지 넘어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부터는 언제부터 좋아질지 고민할 시기라고 생각한다. 경험상 위기는 좋은 투자 기회를 제공했다.”
-지금은 ‘우량 종목에 장기 투자하라’는 말도 통하지 않는데.
“나는 그런 식으로 조언하지는 않는다. 우량 종목이라도 주가 상승으로 인해 적정 가치에 도달하면 팔아야 하고, 시장 하락기에도 적정가치 대비 충분히 하락한다면 우량 종목이 아니라도 사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올라가면 올라가서 못 팔고 빠지면 빠져서 못 파는 패턴을 거치다가 결국 ‘손절’하는 악순환을 끊는 게 중요하다. 기업의 진짜 가치를 탐색하는 기본에 더 충실했으면 한다. 다만 이른바 ‘좋은 투자’는 좋은 기업이 아닌 좋은 주식에 투자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많이 오른 종목이 좋은 주식이 아니고 앞으로 오를 종목이 좋은 주식이다.”
-초보 투자자들에게 조언할 게 있다면.
“지난 2년간 우리는 다시 겪기 힘든 넘쳐나는 유동성과 제로 금리 구간에서 투자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2020년과 2021년의 호황기를 기준 삼아 투자 여부를 판단해선 안 된다. ‘그 좋았던 시절’을 당장 잊으라는 말이 아니다. 당시는 펜데믹으로 인한 비정상적인 상황이었다. 현재 경제 불확실성이 커진 시점에선 그 어느 때보다 더 냉정한 판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걸러야 하는 투자 조언이 있다면.
“‘카더라’ ‘너만 알고 있어’라고 하면서 건네는 투자 정보에 현혹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앞으로 1년 후를 예측하면서 투자 종목을 고민했으면 한다. 펀드 매니저들도 세미나와 기업 탐방 등을 통해 늘 공부하면서 새로운 정보를 얻는다. 이제는 기관 투자자가 아니더라도 유튜브를 포함해 다양한 매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지 않은가.”
-펀드 매니저로서 어려웠던 시기는.
“팬데믹 기간이 가장 힘든 시기였다. 나는 주로 오른 종목을 팔고 빠진 것 중에서 좋아질 수 있는 종목을 사는 역발상 전략을 쓴다. 그런데 시장 쏠림 현상이 심화하면서 상승한 종목이 더 상승하고, 이외 종목들은 시장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역발상 전략을 유지하면서 이 유동성 장세가 꺼질 수 있다는 가능성에 비교적 빨리 대비해서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