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전세 시즌2 ‘상생주택’… 민간 ‘노는 땅’에 공급 늘린다

입력 2022-06-20 04:05

무주택 중산층을 위한 주거복지정책으로 탄생한 서울시 장기전세주택이 이번엔 민간 토지를 이용하는 ‘상생주택’으로 본격적인 시즌2 실험에 들어간다. 더이상 개발할 택지를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민간의 ‘노는’ 토지를 활용해 서울시와 토지주가 일종의 동업 관계를 맺는 공격적 전략이다.

상생주택은 최근 부동산값과 전셋값 폭등으로 장기전세주택에 대한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공급 확대를 위한 방안으로 도입됐다. 일종의 민간·공공 이익공유제인 상생주택의 성공 여부는 장기전세주택 공급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19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마감한 41차 장기전세주택 입주자·예비입주자 공모는 9.1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지난해 9월 마감했던 40차 장기전세주택 공모(10.8대 1)에 이어 잇단 고공행진 중이다. 이번 공모에서 청량리 해링턴플레이스 59㎡(이하 전용면적)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 70% 이하 우선공급은 2명 모집에 403명이 몰려 201.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같은 아파트 84㎡ 일반공급도 6명 모집에 642명이 신청해 역시 107대 1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이밖에도 은평구 DMC SK뷰 도시근로자 월평균소득 70% 이하 우선공급 59㎡(136대 1), 왕십리 주상복합 모노퍼스 38㎡(101.5대 1), 서울숲 아이파크 64㎡(103대 1) 등이 100대 1의 경쟁률을 넘어섰다.

이번 41차 공모에선 상대적으로 고가의 장기전세주택이 위치한 강남권 역시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반포자이 84㎡가 6.8대 1을, 같은 아파트 59㎡도 3.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청담자이 82㎡도 11.5대 1의 경쟁률을 보이는 등 큰 인기를 끌었다.


이처럼 고가의 장기전세주택까지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는 건 임대료가 시세의 최대 80% 수준에 그치기 때문이다. 공공이 임대하는 만큼 돈을 떼일 염려도 없고, 임대료 인상도 재계약 시마다 5%가 최대다. 최근 임대차 3법에 따른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상한제가 시행되면서 전세입자의 경우 한 차례 계약 연장 시까지만 임대료 상승 폭이 연 5%로 제한된다. 그러나 장기전세주택은 임대운영 기간 동안 입주자격 유지 시 2년마다 재계약이 가능하며, 재계약 시마다 5% 초과해 임대료를 올리지 못하게 돼 있어 주거 안정성이 매우 높다.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고, 임대료도 저렴해 중산층 무주택자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2008년 서울 은평구 장기전세주택에 입주했던 직장인 A씨는 “신혼 초 운이 좋아 장기전세주택에 입주해 10년 이상 살고 있다”며 “전셋값이 2억원 정도로 주변에 비해 저렴하고, 환경이 좋아 자녀를 키우기에도 좋다”고 말했다. 이어 “자가주택이 없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대신 아낀 주거비를 두 아이 교육비에 보태고 있다. 가능한 한 오래 살고 싶다”고 덧붙였다.

장기전세주택은 2007년 오세훈 시장이 ‘시프트’라는 이름으로 처음 시작한 공공주택이다. 중산층 실수요자가 굳이 집을 사지 않고도 안정적으로 장기간 거주할 수 있도록 해 주택가격 안정을 유도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오 시장은 지난해 보선 당선 이후 시프트를 상생주택으로 업그레이드했다. 민간 토지를 활용한 공급 확대가 핵심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대규모 공공택지가 고갈되면서 더 이상 주택용으로 개발할 만한 부지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상생주택은 민간 토지주에 인센티브를 주는 대신 공공이 토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공급 채널의 다변화 정책”이라고 말했다.

상생주택은 공공이 토지사용료를 내고 민간 토지를 임차하는 민간토지사용형, 공공과 민간이 공동출자로 법인을 설립해 공공주택을 운영하는 공동출자형, 민간이 토지개발계획을 제안하면 공공이 협상해 최종 합의안에 따라 개발하는 민간공공협력형의 3가지로 이뤄진다. 토지 사용료, 토지 사용기간, 사업종료·청산방법 등을 양측이 협약으로 정할 수 있다.

시는 용도지역 향상, 도시계획시설 해제 등 규제 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대신 일부 공공기여분을 받아 이익을 공유받게 된다. 택지를 개발해 직접 공공이 짓거나, 민간의 재건축·재개발 단지 일부를 매입해 장기전세주택을 공급했던 것과 달리 사업 구상부터 민관이 공동으로 하는 방식이다.

서울시는 일단 지난 1월 과도기 형태의 상생주택 1호를 발표했다. 상봉재정비촉진지구 내 ‘상봉9-I 존치관리구역(조감도)’은 2024년 착공해 2027년 공동주택 254세대, 오피스텔 190실 및 저층 상업시설 등 주상복합시설로 변모한다. 이 구역에 공동주택의 5%인 12세대가 상생주택으로 들어선다. 건물은 서울시가 매입하고 토지는 사업자로부터 20년간 임차하는 방식이다. 지하철 경의중앙선·경춘선·7호선이 지나는 상봉역과 인접해있고 상봉터미널부지 재개발사업도 예정돼 있어 높은 경쟁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공공기여가 없고 건물을 직접 매입하는 등 상생주택의 완전한 형태는 아니지만 일단 첫발은 뗀 셈이다.

시는 완전한 상생주택 구현을 위해 시범사업을 실시키로 하고 지난 3~5월 상생주택 대상지 공모도 처음 실시했다. 시는 2026년까지 기존 방식의 장기전세주택과 상생주택을 합해 7만호의 장기전세주택을 공급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상생주택은 민간에 합리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해 장기전세주택 대상지를 발굴하려는 정책”이라며 “양질의 장기전세주택을 다각도로 공급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