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피격’ 미스터리, 대통령기록물에 열쇠 있다

입력 2022-06-20 00:04
북한군에 의해 2020년 9월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의 부인 A씨와 형 이래진씨가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씨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아들의 편지를 대신 읽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연합뉴스

문재인정부가 2020년 9월 22일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에 대해 ‘월북 의도’를 언급한 경위를 규명하는 과정에서 대통령기록물 열람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많아지고 있다. 피격 공무원 이대준씨 유족은 다각도의 정보공개 행정소송, 관련자 고발을 통해 이씨 사망과 정부 업무처리 내용이 보존돼 있을 대통령기록물을 확인한다는 입장이다. 법조계는 과거 ‘사초 폐기 사건’에서 대통령기록관 압수수색이 이뤄진 전례가 있고 국방부와 해양경찰청 입장이 2년 만에 뒤집힌 만큼 대통령기록물 확인 명분은 마련이 됐다고 보는 편이다.

이씨 유족 측은 지난달 25일 대통령기록관장을 상대로 관련 기록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오는 23일 회신을 받기로 한 상태라고 19일 밝혔다. 유족은 대통령기록관장의 결정이 비공개일 경우 정보 열람을 위한 행정소송에 나설 방침이다.


유족은 지난해 청와대와 해경, 국가안보실 등의 보고 내용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 소송을 제기해 승소했지만 기록들은 장기간 열람이 제한되는 대통령지정기록물로 이관된 상태다. 유족은 법원 공개 판결이 이뤄진 정보가 대통령기록물 지정을 통해 간단히 비공개되는 것은 심각한 알 권리 침해라며 앞서 헌법소원도 제기했었다.

유족 측은 행정소송과 별개로 수사기관을 통한 확인도 모색하고 있다. 청와대가 이씨 사망과 관련해 거짓으로 ‘월북 프레임’ 지침을 하달했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공무집행방해 혐의를 주장하는 것이다. 22일 일단 국가안보실, 민정수석실 관계자를 고소한다고 밝히면서 “이들의 혐의 유무를 알기 위해서는 고등법원장의 대통령기록물 압수수색영장 발부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한 중견 법조인은 “외교관계 저해 우려 시에는 영장이 발부되지 않지만, 과거 ‘사초 폐기 사건’에서도 영장이 발부된 전례가 있다”고 말했다.

법조계는 이번 사안에서 만일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압수수색이 허용된다면 수사의 난도는 사초 폐기 사건만큼 높지는 않을 것이라 예상한다. 기록이 있다면 검색 수준으로 비교적 간편히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얘기다. 사초 폐기 사건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 무단 폐기됐다는 의혹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없어진 기록에 대한 증거를 찾는 일이었고 방대한 포렌식 작업도 동반했다. 당시 검찰은 의혹과 무관해 보이는 제목의 기록물도 일일이 처음부터 끝까지 내용을 확인해야 했다.

대통령기록물 열람을 위한 여야 합의가 쉽지 않다는 점은 결국 수사 절차를 통한 확인 가능성을 높인다. 국회 재적위원 3분의 2 찬성 의결이란 조건은 헌법 개정을 가능하게 하는 수준이다. 법학계에 따르면 이 조항을 통한 대통령기록물 열람은 사실상 불가능할 것이라고 법 제정 참여자들이 판단했다고 한다. 상징적 조항일 뿐이라는 것이다. 유족도 야당에 찬성 의결을 요청하겠지만 거부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유족 측은 국민일보에 “‘정부가 이렇게 말했으니 그대로 믿어라’ 하는 때는 지났다. 국민에 대한 정보 우위성을 악용하는 시대는 종식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선상 동료들이 증언한 ‘방수복’ ‘저체온증’ 관련 내용이 묵살되고 ‘도박빚’이 강조된 배경에 의문을 갖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사건 당일 오후 6시36분에 보고를 받고 오후 9시40분 이씨가 총격을 받을 때까지 어떤 조치를 취했는지에 대해서도 책임 있는 해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