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안전부 장관 직속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자문위)의 권고안이 ‘경찰 통제’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발표될 것으로 전해지자 경찰 내부에서 지휘부 책임론이 거세지고 있다. 자문위가 행안부 장관 사무에 ‘치안’ 업무를 추가하는 등 강도 높은 경찰 관리·감독 방안을 논의 중인 사실이 알려졌음에도(국민일보 5월 24일자 1면 참조) 제때 대응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경찰 고위직 인사와 맞물려 지휘부가 몸을 사렸다는 비판도 나온다.
19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일선 경찰들 사이에선 경찰 지휘부를 향한 반발이 거센 상황이다. 특히 자문위 회의에 경찰 고위직이 참여하고도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많다. 자문위는 6명의 민간위원과 3명의 내부위원 총 9명으로 구성됐는데, 국장급 경찰 간부도 내부위원으로 참여했다. 한 경찰 간부는 “무슨 얘기하는지 알면서도 눈뜨고 코 베인 것 아닌가”라고 했다.
경찰 고위 간부 교체 인사가 단행되면서 사실상 ‘지휘부 공백’ 상태였다는 자성도 나온다. 정부는 지난달 24일과 지난 2일 임기가 보장된 국가수사본부장을 제외한 치안정감 승진 인사를 깜짝 발표했다. 조직의 수장인 경찰청장을 먼저 지명한 뒤 새 지휘부를 구성해 왔던 관례를 깨고 청장 후보군부터 ‘물갈이 인사’를 한 것이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이를 전후해 치안정감 승진 대상자에 대한 개별 면담을 진행해 논란을 부르기도 했다. 또 다른 경찰 간부는 “장관이 승진 대상자들을 두고 면접까지 보는 상황에서 경찰 간부들이 행안부를 향해 제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이 장관은 취임 첫날인 지난달 13일부터 4차례 자문위를 가동해 경찰 통제 방안을 검토했다. 행안부 장관 사무 범위에 ‘치안’ 추가, 경찰청장 지휘 규칙 제정,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등의 방안이 자문위 테이블에 올랐지만, 경찰 지휘부는 별다른 공식 대응을 하지 않았다. 김창룡 경찰청장은 지난달 30일까지도 “경찰법 제정 정신이 반드시 존중돼야 한다”는 수준의 원론적 입장을 밝히면서 “아직 안이 구체화되지 않은 단계에서 말하기 적절치 않다”며 말을 아꼈다.
지휘부가 침묵하는 사이 경찰 내부 여론은 들끓기 시작했다. 경찰 지역별 직장협의회에서 잇따라 비판 서명을 내놨고, 내부 게시판엔 경찰청장 용퇴론까지 나왔다. 여기에 자문위 권고안 발표 예정일(21일)을 앞두고 김 청장이 유럽 출장을 간다는 소식까지 나오자 “임기 말 청장이어서 조직은 안중에 없다”는 볼멘소리까지 터져 나왔다. 김 청장은 기류가 심상치 않자 지난 17일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해 대응책을 논의했다. 또 윤희근 경찰청 차장을 대신 출장 보내기로 결정했다.
경찰의 반발이 예상보다 거세자 자문위 측도 권고안 수위를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권고안에 강력한 경찰 통제 방안이 담길 경우 경찰 지휘부와 행안부를 향한 현장의 비판 수위는 더욱 높아질 것이란 전망이 많다.
김판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