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내를 멋들어지게 꾸민 심리상담센터의 운영자는 인테리어 전공자였다. 심리학도 상담학도 공부하지 않은 그는 관련 학과 대학원생들을 싼값에 데려다 알바생으로 쓰고 있었다. 1시간 상담에 10만원이 들어오면 알바 상담사에게 3만~4만원을 주고 6만~7만원을 떼어간다. 그는 지인인 상담학과 대학교수에게 이런 영업 방식을 자랑처럼 늘어놓으며 “교수님도 해보시라”고 꾀었다고 한다. “이러시면 안 된다”고 했다는 교수의 표정에선 분노 섞인 환멸이 느껴졌다.
심리상담시장 취재를 시작하면서 처음엔 황당했다. 파고들수록 엉터리가 너무 많아 놀랐고 마지막에 다다라서는 허망했다. 엉망도 이런 엉망이 없는데 손쓸 방법이 딱히 없었다. 애초 법이란 게 이 바닥엔 없었다.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은 지난달 23일부터 이달 16일까지 후속 보도 포함 12회에 걸쳐 도떼기시장 같은 심리상담업계 실태를 보도했다. 이 시장은 누구라도 “내가 심리상담사요” 할 수 있는 무주공산이었다. ‘(우리만 몰랐던) 상담 시장 X파일’이라는 시리즈 문패는 원래 ‘도떼기 상담시장’이라고 달았다가 고심 끝에 바꿨다. 실상을 보면 저만한 표현이 없지만 심리상담에 진심인 이들까지 매도당하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했다. 최소한의 배려였다.
심리상담사 자격은 아무나 만들어 팔 수 있다. 또 누구나 단돈 몇만원짜리 민간자격을 사서 심리상담사 노릇을 할 수 있다. 자격이 없어도 심리상담소 차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다. 의사를 하려면 의사 면허가, 변호사를 하려면 변호사 자격이 있어야 하지만 심리상담사는 그런 요건이 없다.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게 심리상담사 자격이다.
엉터리 심리상담사에게 민간자격증은 자신의 무자격을 감추고 고객을 유인하는 떡밥에 불과하다. 심리상담소는 사업자등록 때 사무실이라고 적어낼 주소만 하나 있으면 나라에서 영업을 허용해준다. 그 후로도 세금만 잘 내면 시비를 걸지 않는다. 사업자등록 때 써낸 주소에서 실제 영업을 해야만 하지만 그게 아니라고 해도 알 길이 거의 없다.
병의원은 보건 당국이, 학원은 교육청이 감독한다. 식당이나 카페도 지방자치단체 관리를 받는다. 하지만 심리상담소는 이런 관리 주체가 없다. 상담소 운영자에게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도 따지지 않는다. 차린 뒤엔 제대로 영업하는지 누구도 살펴보지 않는다. 안전한 상담을 위해 상담소를 어떻게 운영하고 상담비는 얼마를 받아야 적정한지 같은 기준도 전혀 없다. 좋게 보면 시장 자율에 맡긴 것이고 나쁘게 보면 방치인데 현실은 후자에 가깝다.
자격 얘기로 돌아가자. 심리상담업계를 도떼기시장으로 만드는 주범 중 하나가 허술한 자격 체계다. 심리상담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국가 자격은 청소년상담사 임상심리사 정신건강임상심리사 직업상담사 정도다. 직업상담사는 구직과 무관한 심리상담을 할 수 없고, 청소년상담사는 성인인 대학생 상담까지 아우르지만 현장에선 ‘청소년’이라는 단어가 발목을 잡는다. 임상심리사 정신건강임상심리사는 직접 상담소를 차려 내담자를 상대하기보다는 유관기관에서 일하는 기술 인력으로 여겨진다. 관련 학회들이 굳이 자격을 새로 만들려는 이유가 그 한계 때문이다.
본보 보도 이후 보건복지부는 심리상담을 정신건강 서비스로 보고 민간자격 허들을 높이기로 했다. 이미 난립한 자격을 정리할 기준도 만든다. 전국에 재난심리회복지원센터를 운영하는 행정안전부와 대한적십자사는 상담활동가 자격요건을 조인다. 적십자는 강사급 상담사들에게 회의를 소집했다. 이제 시작이다. 심리상담 자격증을 찍어내는 업자나 심리상담으로 돈벌이해온 엉터리들은 장삿길 막히기 전에 얼른 벌고 튀자는 생각일 것이다. 그들부터 걷어내야 한다.
강창욱 이슈&탐사팀장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