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에 방영을 시작한 밥 로스의 텔레비전 쇼, ‘그림을 그립시다(The joy of painting)’를 이제 봤다. 구불거리는 갈색 털을 머리부터 턱 밑까지 잔뜩 기른 남성이 그림 그리는 방법을 가르치는 쇼, “참 쉽죠?”라는 명대사로 여러 번 패러디된 히트작이다. 그의 목소리는 아이를 재우는 자장가처럼 조심스럽고 온화해서 불면증에 걸린 이들이 여전히 자주 찾는다.
그림을 그리며 그토록 따뜻한 어조로 말할 수 있는 건, 텔레비전의 거짓말일 것이다. 물감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질 때 혹은 엉뚱한 곳으로 물감이 삐져나갔을 때, 어떤 수로 심한 욕을 삼킬 수 있단 말인가? 혹시 그 또한 터져 나온 욕설로 방송을 멈춘 적이 파다했을까? 하지만 그는 실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실수한 것이 아니라 그저 행복한 사고와 우연히 마주쳤을 뿐이에요.” 그런 그도 완벽주의적인 면모로 촬영 때마다 같은 그림을 세 건이나 그렸다는데….
그가 캔버스 위로 붓질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렸을 적 미술 시간에 들었던 말들을 떠올린다. 어떤 것은 너무 작아 보이고 어떤 것은 너무 커 보인다는 것, 또 어떤 것은 너무 밝아 보이고 어떤 것은 너무 어두워 보인다는 것. 가장 재미있는 것은 그 모든 거리감과 명암이 하나의 뭉텅이로, 붓이 밟고 지나간(즈려 밟거나 혹은 가볍게 점프) 자국만으로 표현된다는 점이다. 그가 커다란 붓으로, 두께감이 있는 물감을 찍어 과감히 덧칠해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은 반칙 같지만’ 나이프를 한 번 문지르는 것만으로 어떻게 설산의 그림자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트릭을 공개하는 마술사 같다. 나는 탄식한다. ‘이럴 수가!’ ‘그런 거였어?’ ‘참 쉽다(보기엔).’ 나는 요즘 하루에도 몇 번씩 눈을 가늘게 뜨고 모든 사물을 뭉텅이로 본다. 실눈을 뜬 세상은 금세 아름다워 보인다. 조금은 반칙 같지만….
이다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