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주 우려 없음 강조했던 백운규… 법원 “추가 수사 불가피”

입력 2022-06-17 04:04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5일 밤 서울 송파구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나오고 있다. 뉴시스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측은 지난 15일 구속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그가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연구자로 평가받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꾸준한 연구 활동으로 교수직을 충실히 수행해온 만큼 도주의 우려 등이 없다는 방어 논리를 편 것이다.

영장 재판 결과는 구속영장 기각이었지만, 검찰 안팎에선 백 전 장관이 낙관할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평가가 나왔다. 법원의 기각 사유 속에는 혐의가 대체로 소명된다는 판단, 산업부 공무원들의 관련 진술이 회유하기 어려운 상태로 굳어져 있다는 판단이 담겼다. 법원은 추가 수사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도 판단했는데, 향후 수사의 주안점은 사퇴 종용 및 일부 채용 비리 과정에서 청와대 인사들의 공모관계가 있었는지 여부다.

1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백 전 장관 측은 검찰이 제시한 범죄사실 각각에 대해 사실적·법리적 쟁점이 있음을 항변했다. 백 전 장관 측은 그가 최근 2년 연속 세계적으로 영향력 있는 연구자로 평가받은 자료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 전 장관은 2020년과 지난해 학술정보기업 클래리베이트가 발표하는 ‘논문 피인용 횟수가 가장 많은 세계 상위 1% 연구자’로 선정됐다.

이러한 백 전 장관의 지위와 태도를 종합 판단한 법원의 결론은 영장 기각이었다. 다만 혐의가 소명되지 않았다는 판단이 아닌 방어권 보호 취지였고, 기각 사유 자체가 통상과 달리 길었다. 한 변호사는 “무엇보다도 당시 산업부 공무원들이 직권남용 공범이 아닌 피해자로서 진술을 유지하고 있는 점이 엿보인다”고 했다. 앞서 법원은 “백 전 장관이 다른 피의자나 참고인을 회유해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을 하게 할 가능성이 사실상 없다”고 봤다.

추가 수사는 백 전 장관의 공모관계 여부를 중심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백 전 장관의 범행 무렵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으로 재직한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일단 참고인으로 출석할 예정이다. 당시 박 의원의 윗선인 인사비서관은 김우호 전 인사혁신처장, 인사수석은 조현옥 주독일 대사였다. 장관이 스스로의 결정으로 수많은 산하 기관장의 사표를 받아내고, 내정자에게 면접지를 유출할 수 있다고 보는 시각은 드물다. 이번 사건과 닮은꼴로 꼽히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도 앞서 장관과 청와대 간 조율 과정의 단편이 드러났었다.

당시 법원은 블랙리스트 관행 주장을 질타했고 청와대 비서관급 이상의 개입을 의심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청와대 비서관이라는 지위에 비춰 내정자를 확정하고 지원 결정을 하는 것은 피고인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는 없다”며 김은경 전 장관과 함께 기소된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는 이유를 설명했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야권의 ‘보복 수사’ 주장에 대해 “구체적 수사를 지휘하지 않는다”면서도 “중대한 범죄 수사를 보복이라고 한다면 상식적으로 국민께서 전혀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경원 임주언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