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리에 오래 머물면 많은 것들이 쌓인다. 책상 위에는 읽었거나 읽으려던 책들과 연초에 받은 뒤 한 글자도 쓰지 않은 새 업무용 다이어리들, 각종 자료, 지나간 신문, 종류별 필기도구, 개인 위생용품, 진통제를 포함한 상비약, 간식거리, 명함들이 쌓여 있다. 코로나19 확산 상황에서 받은 휴대용 손 소독제도 무려 3개나 있다. 종이가방도 몇 개 있다. 다른 것도 많다. 아주 너저분하다. 개인용품을 제외하면 지금 버려도 되는 물건이 3분의 2를 넘는다. 자리를 옮길 때 정리하면 된다는 생각에 그냥 뒀다. 하지만 자리를 옮겨 깨끗한 상태가 되더라도 얼마 가지 않는다. 한 달도 채 안 돼 책상 위는 온갖 잡동사니로 다시 가득하다.
컴퓨터 저장장치도 마찬가지다. 1테라 용량의 절반 이상을 사용 중이다. 거의 문서나 사진이다. 나름 정리한답시고 폴더로 나눠 정리해놓긴 했지만 안 열어보는 폴더와 파일도 많다. 인터넷 브라우저의 즐겨찾기 목록은 더 가관이다. 접속되지 않는 주소가 꽤 된다. 일일이 눌러 확인하다 지쳐서 포기했다. 언젠가 전부 지우려고 한다.
수납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정리정돈의 방법 다섯 가지는 꺼내기, 과감하게 버리기, 같은 종류로 분류하기, 사용 빈도에 따라 자리 만들기, 유지하기다. 이 방법을 따른다고는 하는데 늘 버리기가 문제다. 과감하기는커녕 미련에 눌려 있다. 물건에 의미를 부여해서일까 2년 이상 사용하지 않은 것인데도 버리질 못한다. 올해 초 휴대전화 연락처를 정리하던 때도 그랬다. 처음엔 쉬웠다. 연락하지도 연락할 필요도 없는 전화번호부터 지워나갔다. 지우기를 선택하고 망설이게 되는 번호는 결국 지우지 못했다. 많이 지웠다고 생각했는데도 800명 가까이 남았다.
문화인류학자인 로빈 던바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1993년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인맥 최대치는 평균 150명이라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150명은 ‘던바의 수’로 불린다. 던바 교수는 의미 있는 관계란 공항 라운지에서 만났을 때 어색해하지 않고 인사할 정도로 친숙한 사람, 초대받지 않은 술자리에서 우연히 동석해도 당혹스러워하지 않을 정도의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믿고 의지하는 ‘절친’은 5명, 친한 친구 15명, 좋은 친구 50명, 친구 150명, 지인 500명, 얼굴을 아는 사람은 1500명 안팎이다. ‘던바의 수’는 20대 초반 정점을 찍은 뒤 30대에 150명으로 정리돼 30년간 유지되다가 60대 후반에서 70대 초반에 감소한다.
인간관계에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정리하라고 전문가들은 권한다. 일방적인 사람, 무례한 요구만 하는 사람, 험담을 즐겨 하는 사람, 만나도 전혀 즐겁지 않은 사람 등이다. 만남을 거절하거나 서서히 만나는 시간을 줄여서 자연스럽게 멀어지면 된다. ‘진 빠지게 하는 사람’이 뭐라 생각하든 상관없다. 인간관계는 ‘던바의 수’만으로도 충분하다.
공인들도 마찬가지다. 국민을 위한 정책을 놓고 공방을 벌여도 시원찮을 판에 한 달도 안 돼 권력 다툼에 패거리 짓기로 싸우는 모습만 보여준다. 시사 프로그램들은 거의 공해 수준이다. 패널 한 사람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기저기 다른 프로그램에 나오기도 한다. 정치 관련 유튜브 진행자들은 더 심하다. 거의 ‘아무 말 대잔치’로 슈퍼챗 받기에만 골몰한다. 이들이 ‘150명’ 안에 들어와 있다면 곧장 정리 대상이다.
책상도, 직책도, 관계도 영원하지 않다. 꼭 필요한 약간의 물건과 좋은 친구, 소중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시간은 늘 부족하다. 즐겁고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을 가지려면 버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