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조카가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열린 부모체험학습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조카 둘은 같은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데, 매부의 출장으로 내가 대신 참석하게 된 것이다. 나와 동생은 각각 큰조카와 작은조카 반에 들어갔다. 프로그램은 안전 교육, 악기 체험, 고고학자 체험, 과학 도구를 이용한 세탁기 만들기, 야외 피크닉, 목공 등 6살 조카 연령대에 적합한 것들로 구성돼 있었다. 조카는 내내 호기심을 보이며 체험학습을 즐겼다.
그런데 재밌게 참여하면서도 간혹 긴장감이 느껴질 때가 있었다. 진행자가 나에게 “어머니”라고 부를 때마다 조카는 “엄마 아닌데요. 이모인데요”라고 대꾸했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은 내가 이모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진행자들은 처음 만났으니 으레 엄마와 아들 관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더구나 행사명이 부모체험학습이니 이해를 못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조카 입장에서는 그 말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모이지 엄마가 아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낮에 조카가 보인 반응이 떠올랐다. 그러면서 여러 물음도 생겼다. 오늘 어린이집에 왔던 다른 아이들은 모두 엄마 아빠가 왔던 걸까? 나처럼 친척이나 보호자의 친구가 대신 온 경우는 없었을까? 할머니나 할아버지, 위탁가정의 보호자들은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할까? 만약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의 부모 참여 프로그램을 어떻게 생각할까?
아이를 돌보는 일에 여러 사람과의 관계가 필요하고, 실제로 부모가 아닌 여러 사람들이 공동 양육하거나 보조 양육자로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어린이집이나 학교에서는 그 역할을 핵가족 중심의 ‘부모’에게 한정하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럴 때 부모가 아니지만 육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상한 관계처럼 위치가 지어진다. 다양한 가족 구성 형태가 늘어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다른 언어와 관계적 상상력을 그려볼 수 있을까?
천주희 문화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