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 한 편 놀라며 읽게 된다… SF-문학 경계를 허무는 작가

입력 2022-06-16 18:59 수정 2022-06-17 16:22
2019년 데뷔해 SF적 상상력에 바탕한 인상적인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는 천선란 작가. 지난 2년간 쓴 10편의 단편을 묶은 새 소설집 ‘노랜드’는 그가 왜 한국 문학의 신성으로 불리는지 알려준다. 한겨레출판 제공

자기 존재 바깥으로 나가고자 하는 두 존재가 있다. 하나는 인공지능이고, 하나는 인간이다. 두 존재는 각자의 이유로 자신이 속한 세계의 바깥을 열망하고 마침내 서로의 세계를 바꾼다. 그 행위는 자신의 세계에서는 죽음으로 받아들여지나 그 존재에게는 탈출이고 해방일 수 있다.

천선란의 두 번째 소설집 ‘노랜드’에 포함된 단편 ‘두 세계’는 죽음에 대한 인식을 확장한다. 끝이나 포기, 상실 같은 말로만 얘기할 수 없는지 모른다. 알고리즘의 세계에서 나와 인간의 몸을 갖게 된 인공지능이 이렇게 말한다. “제가 이곳에 왔습니다.” “그러니 그녀도 그곳에 갔을 것입니다.”


천선란은 ‘작가의 말’에서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떠나보낼 예정인 상태를 너무 오랫동안 지속”했다고 얘기했다. 그런 시간을 보내며 작가는 죽음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하게 된 걸까. 그가 우주를 좋아하게 된 이유를 설명한 대목을 보면 우주를 떠올리는 일은 지구를 다시 보는 일이다. “우주를 떠올릴 때마다 고요한 그곳에 홀로 시끄럽게 돌고 있는 지구가 좋았다.… 불안으로 꽉 찬 나를, 나만 한 크기가 아니라 좁쌀만 한 크기로 만들고 싶어서 우주가 필요했던 것 같기도 하다.”

천선란은 2019년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받아 데뷔한 이후 사이보그와 동물, 인간의 공존을 그린 ‘천 개의 파랑’, 식물의 소리를 듣는 외계인 이야기 ‘나인’ 등을 발표했다. 이번 소설집은 지난 2년간 청탁받아 쓴 단편 10편을 묶은 것이다. 한 편 한 편 놀라며 읽게 된다.

처음 나오는 ‘흰 밤과 푸른 달’은 멸망하는 지구가 배경이다. 주인공인 우주선 함장 ‘시에라’는 지구를 탈출하는 중이다. 격변을 버틸 수 있는 많은 대안을 세웠으나 모든 시뮬레이션이 실패로 끝났다. 그는 우주선 안에서 화산재에 휩싸인 지구라는 행성의 마지막을 지켜본다.

‘옥수수밭과 형’은 처음엔 아름다운 동화처럼 읽히는데 점점 호러가 된다. 죽은 형이 돌아온다는 이야기. 그것도 한 명이 아니다. “형이 죽은 이틀 후, 나는 옥수수밭에서 형을 만났다.” 그리고 “그날 옥수수밭에서 네 번째 형을 만났다.”

‘제, 재’ 역시 흥미로운 설정이 돋보인다. ‘재’와 ‘제’는 하나의 몸을 공유하는 두 사람이다. 두 사람 중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는 사람이 몸을 통제할 수 있다.

이번 소설집을 읽어 보면 천선란이 왜 그렇게 빠른 시간에 인기 작가로 떠올랐는지 알 수 있다. 그는 SF에 바탕을 둔 새롭고 흥미로운 상상력을 보여주는데, 이를 묘사하는 문장이나 구성이 정교하고 아름답다. 그의 소설에는 서사의 힘만 번쩍거리는 게 아니다. 답이 없어 보이는 인간과 현실의 문제를 다른 차원의 이야기로 접근해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놀라움이 있다. 천선란은 SF와 문학의 경계를 허물어가는 작가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