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의 중심에 있는 백운규(사진)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지난해 2월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 당시에도 구속 문턱에서 생환했던 백 전 장관으로서는 검찰의 두 차례 구속수사 시도를 피하게 됐다. 블랙리스트 수사의 방향키는 여전히 문재인정부 청와대를 향할 것으로 보이지만, 핵심 피의자 신병 확보 실패로 수사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번 수사에 대한 더불어민주당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서울동부지법 신용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5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는 백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신 부장판사는 “도망 염려와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또 일부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봤다.
백 전 장관은 이날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출석하며 “법이 정한 규정에 따랐다”고 하는 등 줄곧 혐의를 부인해 왔다. 이에 신 부장판사는 “범죄 혐의에 대한 대체적인 소명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결국 오래 전 벌어진 사건이고, 피의자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구속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백 전 장관은 2017~2018년 산업부 산하 기관장 13명의 사퇴를 종용하고, 2018년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장 공모 과정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비서실 정무수석을 지낸 황창화 현 공사 사장에게 면접 예상질의서와 답안지를 전달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검찰은 그를 소환 조사한 지 나흘 만인 지난 13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 기각에 따라 다음 단계로 나가려던 검찰 수사가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다만 검찰은 법원이 영장을 기각하면서도 “대체적인 범죄 소명이 이뤄졌고, 수사기관에 상당한 양의 객관적 증거가 확보돼 있다”고 언급한 점을 주목한다. 수사 엔진 자체가 꺼지진 않았다는 게 검찰 인식이다.
검찰은 백 전 장관에 대한 보강 수사 진행과 함께 청와대와 산업부 간 ‘연결선’을 규명하는 작업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양측의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지목된 박상혁 민주당 의원도 조만간 불러 조사할 계획이다. 산업부의 ‘기관장 물갈이’ 이면에 청와대의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확인하는 차원이다. 이미 지난 3월 산업부 압수수색에서 박 의원이 연루된 정황이 담긴 이메일 등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서울동부지검과 서울중앙지검에 산업부 외 다수 부처의 블랙리스트 의혹 사건이 접수돼 있다는 점에서 지난 정부 초기의 공공기관 임원 교체 인사 전반을 겨눈 사정 바람이 불 수 있다는 관측도 여전하다.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모두의 예상대로 윤석열 정권이 최측근 한동훈 검사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해 보복 수사를 개시했다”며 “정치 보복 수사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또 “윗선은 어디까지고 책임은 누가 지나. 인사에 관한 문제에서 (검찰 수사가)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안 간다는 보장이 있느냐”고 따졌다.
박민지 안규영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