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정부’의 조건은 무엇일까. 김병준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은 ‘탈국가’ ‘탈중앙화’를 지목했다. 서비스를 생산해서 그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게 아니라 시민 스스로 많은 공공재와 공공서비스를 생산하게끔 돕는 정부가 좋은 정부라는 의미다. 김 전 위원장은 국민일보가 15일 주최한 ‘2022 국민공공정책포럼’에서 ‘다시 생각하는 정부와 시민: 35번의 자유’라는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하면서 “정부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던 시대는 지났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되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물론 정부가 힘을 빼면 초기에 혼란이 올 수 있다. 하지만 김 전 위원장은 “그렇다고 다시 정부가 칼을 빼내면 안 된다”고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충분히 자유를 바탕으로 한 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정부 한계는 분명하고, 민간부문의 성장은 두드러진다”고 덧붙였다.
김 전 위원장은 현재 국가의 과도한 규제가 만들어낸 ‘억지’가 곳곳에 산재해 있다고 꼬집었다. 핀테크 업체인 토스를 사례로 들었다. 김 전 위원장은 토스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서비스가 중단됐을 때를 거론하면서 “토스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건 정부의 규제가 강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규제의 존재를 알았다면 토스도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한민국의 벤처 사업가들이 정부 규제로 제대로 일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정부 규제가 민간의 창의성을 제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국가와 민간에 대한 관점의 오해에서 비롯돼 이런 현상이 벌어진다고 진단했다. 김 전 위원장은 “국가는 뭐든지 공적인 걸 하고, 민간은 무조건 개별적이고 개인의 이익을 위한 일만 한다는 건 오해”라면서 “이를 뜯어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오히려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CSR), 가치 공유 창출(CSV),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앞장서고 있다. 앞장서고 싶어서 그러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변화된 의식에 따라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겨울이 오는 걸 가장 빨리 아는 건 기업이다. 겨울이 온다 싶으면 초여름부터 준비를 한다. 그만큼 민간부문이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께서 해주신 말씀인데, 그 말씀이 크게 틀리지 않는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김 전 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에서 ‘작은 정부’ ‘민간 주도’ 기조가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던 김 전 위원장은 윤석열정부의 국정운영 밑그림을 함께 그렸다. 그는 “윤 대통령이 35번의 자유를 언급하며 강조하고 싶었던 건 ‘레짐’(국가와 시민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의 변화”라며 “자유의 이름으로 자유를 제한했던, 국가가 하는 것이니 받아들였던 지금까지의 자유에서 벗어나 민간의 자유권을 존중하는 체제로 가보자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자유는 분배와 형평이 어그러졌을 때 무너진다. 윤석열정부에서 강조하는 자유민주주의를 강화하기 위해 분배와 형평성을 반드시 신경써야 한다”고 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