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진영은 긴 시간 ‘탄핵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박근혜 탄핵’에 대한 책임이 누가 더 큰지를 놓고 ‘네 탓’ 혈투를 벌였다. 친박과 비박은 멱살잡이했고, 그럴수록 두 세력 모두 탄핵의 늪에 점점 더 깊숙이 빠져 들어갔다.
지금 더불어민주당 사정도 마찬가지다. ‘선거 2연패의 늪’에서 허우적대고 있다. 대선과 지방선거의 연이은 패배 결과를 놓고 ‘책임 전가’ 전쟁이 한창이다. ‘이재명 책임론’과 ‘문재인정부 실패론’이 동시에 나온다.
프로야구 경기만 해도 졌을 때 패인이 한둘이 아니다. 찬스를 놓친 타자나 실투한 투수가 문제일 수 있다. 한발 늦은 투수 교체나 수비 실책이 패인일 수 있다. 한 경기의 패배도 여러 가지 원인의 복합적인 상호 작용 결과인데, 대선과 지방선거 패인을 무 자르듯 단정짓는 것은 단순하거나, 무모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저의가 있는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민주당에 패배를 안긴 것은 정권교체 열기였다. 정권교체 열기는 ‘반(反)문재인 바람’이었다. 친문들은 이재명 의원이 6·1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것을 지방선거의 패인으로 지목한다. 애초 지방선거가 민주당에 유리한 판세였는데 이 의원의 출마 선언으로 전세가 급작스럽게 뒤집혔는가. 이 의원의 등판이 기대했던 만큼의 파괴력을 보이지 못한 것은 사실이나 패배의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것은 가혹한 처사다.
이 의원이 출마를 선언하기 직전에 만났던 민주당 고위 관계자는 “우리한테 이재명 말고 내세울 상품이 있나”라고 답답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던 게 기억난다. 지금 이 의원을 공격하는 친문 의원들이 지방선거 전면에 나섰더라면 판세는 달라졌을까. 대답은 회의적이다.
현재 벌어지는 민주당의 집안싸움은 탄핵 정국 당시 보수 진영의 내전을 빼다 박았다. 친박들은 탄핵 찬성파들을 향해 “배신자”라고 공격했고, 비박들은 친박들을 겨냥해 “박근혜 치맛자락 세력”이라고 맞받아쳤다. ‘배신자’라는 단어는 민주당으로 넘어오면서 ‘수박’(겉과 속이 다른 사람)으로 진화했다.
친문은 문재인정부 부동산 정책들이 실패를 거듭했을 때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이재명 의원이 민주당 당권에 도전할 기미를 보이자 포문을 열었다. 친문에게는 부동산이라는 민생 문제보다 2024년 공천권을 쥘 차기 당대표가 더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은연중에 노출시켰다. 친문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친문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2019년 7월 4일 민주당 의원총회 때다. 훗날 문재인정부에서 주일대사가 되는 강창일 의원이 한·일 두 정부를 함께 비난하자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양 검지로 ‘엑스표’를 그렸다. 자유로운 토론이 막혀 있는 집권 여당에서 좋은 정책이 나올 리 만무했다. 그런데 차기 전당대회가 8월로 다가오자 민주당 내에서는 백가쟁명의 시대가 열렸다. 지금은 당대표가 ‘엑스표’를 했을 때보다 더 말을 아끼고 고민할 때다.
‘이재명의 책임이 더 큰가, 문재인의 책임이 더 큰가’ 식의 논쟁은 해결책 모색의 외피를 쓴 싸움일 뿐이다. 탄핵의 늪에 빠져 있던 보수가 그렇게 자멸하고 있었다. 문재인정부의 일부 인사들이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을 스타로 만들면서 보수는 탄핵의 늪에서 간신히 빠져나왔다. 보수는 자력이 아니라 외부적 도움으로 올가미에서 벗어난 것이다. 민주당이 선거 2연패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가장 먼저 네 탓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아니면 기약 없이 상대방의 실수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윤해 정치부장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