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분명히 새 정부를 테스트하기 위해 최대한 긴장을 높이려고 할 것이다. 국지전 정도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때 윤석열정부가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앞으로 5년간의 남북관계가 규정될 것이다.”
재미 석학인 신기욱 미국 스탠퍼드대 월터 쇼렌스타인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소장(사회학과 교수)의 분석이다. 한·미동맹, 북한 문제, 동북아 각국의 외교정책 등에 정통한 그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 직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독일 슈피겔, 영국 가디언 등 해외 주요 언론 10여곳이 인터뷰를 청했을 만큼 국제적인 지명도가 높다.
신간 출간과 관련된 행사 참석차 3년 만에 한국에 온 신 교수를 13일 서울 용산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그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결단만 남았다는 북한의 7차 핵실험과 그로 인한 남북관계 전망, 북·미관계, 윤석열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제언 등을 들었다.
-북한의 7차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경고가 무성하다. 실제 강행할까.
“가능성이 크다. 핵과 미사일 문제는 기술적인 측면과 정치적인 측면이 있다. 미사일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까지 가기 위한 기술 발전 측면에서 계속 시험발사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핵은 소형화해 ICBM에 장착하는 데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기술적으로 상당히 완성도가 높다. 미사일보다 실험해야 할 필요성이 적다. 핵실험은 정치적인 타이밍 문제인데, 그걸 보고 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강대강 정면승부’를 언급하고 강경파인 리선권과 최선희가 각각 통일전선부장과 외무상에 기용되면서 남북관계가 더 경색될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리선권과 최선희로 라인업을 다시 정비하면서 본격적으로 협상이든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제스처로 보인다. 북한은 전략적인 사고가 굉장히 강하고, 최선희는 워낙 미국통이다. 강온전략으로 핵실험을 하면서 테이블에 나올 것이다. 다만 협상 전에 한 번 정도 충돌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명박(MB)정부 때 천안함 피격과 연평도 포격 도발처럼 새 정부가 들어서면 항상 그랬듯이 테스트를 하려고 할 텐데, 우리의 대응에 따라 긴장 관계가 될 수도 있고 새로운 물꼬를 틀 수도 있다.”
-북한이 코로나19와 대북 제재, 가뭄으로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맞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런 내부사정에도 핵실험 재개를 준비하는 김 위원장의 속내는 무엇일까.
“북한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본다. 북한은 영변의 핵을 조금 양보하더라도 제재를 푸는 것을 원하고, 리선권과 최선희를 임명한 것도 그 목표를 위한 준비일 것이다. 북한은 해킹으로 돈벌이를 하고 있다. 세계 가상화폐 거래소를 해킹해 지난해에만 4억 달러(5100억원)를 챙겼다. 북한 경제 규모로는 큰돈이다. 코로나19로 중국과 국경이 한동안 닫혔는데도 북한이 버틸 수 있는 이유에 대한 부분적인 설명이 된다. 대북 제재의 구멍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북한은 언제쯤 대화 테이블로 나올까.
“2017년 전쟁 이야기가 나오고 한창 위기 상황에 있던 그다음 해 평창 동계올림픽에 김여정 당시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이 왔다. 문재인정부가 한반도 운전자론을 강조했지만 사실 2017년 후반부에 북·미 간 정보라인이 가동됐다. 6차 핵실험을 하면서도 물밑대화가 있었고 교감이 이뤄졌기 때문에 북한이 평창에 온 것이다. 서글프지만 북한은 미국이 움직여야 움직인다. 이번에도 미국과 최소한의 교감이 있은 후에야 테이블에 앉을 것이다.”
-교수님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북한에 관심이 없다면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때의 ‘전략적 인내’에 빗대 ‘전략적 무관심’이라고 표현했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진 건 도널드 트럼프가 유일했다. 미국 외교안보 정책에서 한국이 우선순위로 올라간 적은 없다. 바이든 행정부 대외정책 최우선순위는 중국이다. 북한은 90년대 말 ‘페리 프로세스’에 이어 두 번째 기회를 놓쳤다. 아마 다시 그런 기회는 없을 것이다.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가 공석이고 성김 대북 특별대표는 인도네시아 대사를 겸하고 있다. 워싱턴의 관심이 많이 줄었다. 미국이 전략적 무관심으로 일관한다면 한국이 어떻게 상황을 끌고 나갈 것인지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가 나와야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러시아와 중국, 북한이 끈끈해지면서 북한에 유리한 구도가 형성됐다.
“국제질서가 권위주의 대 자유민주주의로 재편되면서 변수가 생겼다. 과거에는 미국도 중국의 역할을 기대했지만 이제 중국의 협조를 구하기 힘들어졌다. 6차 핵실험 때는 중국과 러시아가 제재에 동참했지만 7차 핵실험을 해도 유엔이나 국제사회의 제재가 어렵다. 북한 역시 겉으로는 꽃놀이패이지만 생각이 복잡할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원하는 건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다는 걸 스스로 알기 때문이다. 미국과 관계 개선을 해야 전략적으로 힘이 더 생길 텐데 어쩔 수 없이 중국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
-북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요원한 상황에서 윤석열정부는 어떤 대북정책을 펴야 할까.
“북한과 양자 대화, 다자 대화, 압박, 제재 모두 시도해봤다. 그동안 안 해봤던 게 정상회담이었는데 결국 잘 안 됐고, 6자회담도 한·미·일-북·중·러로 완전히 3대 3으로 갈리게 되면서 어렵게 됐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현실적인 것은 결국 당근과 채찍이 아닌가 싶다.”
-윤석열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다. 북핵에 대해서도 한동안 사용하지 않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공개회의 등에서 언급하고 있다. 전략적 측면에서 어떻게 보는가.
“현 정부 외교안보팀에는 MB 때 사람이 많다. 경험이 있는 건 좋은데 10년 세월이 지났고 상황도 변했다. CVID는 트럼프 때도 검증을 원했지만 북한이 하지 않았고, 특히 불가역적인 건 설사 핵을 포기해도 이미 기술이 있기 때문에 과학자들을 전부 추방하지 않는 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금 상황은 원점으로 되돌아간 셈이다. 핵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떻게 한반도의 평화를 지킬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교수님이 온건한 대화파였다가 6차 핵실험 이후에 “북한이 핵보유국인 것은 기정사실이고, 우리도 핵 억지력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과 같은 맥락인가.
“문재인정부는 북한이 정말 비핵화를 할 의지가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했다. 전제가 잘못됐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현실적으로 보자. 비핵화를 추구하되 이제는 좀 다른 전제, 그러니까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방법을 찾을 때가 됐다.”
-북한 외교관도 많이 만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나.
“10여년 전 사석에서 고위급 외교관에게 정말 핵을 포기하냐고 물었더니 ‘외부의 위협이 없어지면’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우리 학교의 지크프리트 헤커 같은 온건파는 지금이라도 핵 동결부터 하자고 주장한다. 그분은 94년 핵 동결 기본합의가 없었으면 지금 북한 핵무기가 훨씬 많았을 테니 실패가 아니고, 일단 동결을 한 후 대화하자는 입장이다. 북·미 간 불신이 커져서 이제 그런 주장은 소수가 됐다.”
-윤 대통령이 이달 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어떻게 보나.
“나토에 가고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좋다. 군사 경제 문화적 파워까지 갖춘 세계 10위권 국가로서 국제질서 재편 과정에 역할을 해야 한다. 다만 불필요한 언사로 중국을 자극할 이유는 없다. 대선 후보 시절 사드 추가 배치는 굳이 꺼낼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취임 한 달을 넘긴 윤 대통령을 평가한다면.
“취임 후 1년 정도는 평가 이전에 기다려보고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은 현 정부의 중추를 이루는 검찰의 슈퍼네트워크가 혁신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페미니즘은 글로벌하게 활동하는 데 중요한 이슈다. 안티 페미니즘의 이미지는 빨리 벗지 않으면 안 된다. 배려나 안배 차원에서 여성 장관 몇 명 임명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한국 정치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 정치인들은 통합을 말하지만 적대와 분열의 팬덤정치가 논란이다.
“팬덤정치는 걱정스럽다. 젠더갈등과 세대갈등도 심각하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통합의 정치만 강조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본다. 다원화된 사회구조에서는 통합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게 필요하다. 통합의 정치라는 게 모두 자기 기준으로 내 식대로 통합하고 싶은 것 아닌가. 진보와 보수의 생각이 같을 수 없다. 다르되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토론하면서 공존하는 정치가 이뤄져야 한다.”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