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고물가가 현실화하면서 부가가치세(부가세) 인상 논의가 쏙 들어갔다. 현 정부 주변에선 불과 지난달까지만 해도 재정 건전성 회복과 늘어나는 복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부가세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물가라는 현실적 장벽에 부가세 인상이 어려워진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재정 건전성을 회복하기 위한 다른 복안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14일 “현재로서는 부가세 인상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부가세 인상 논의의 불을 붙인 건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였다. 이 총재는 지난 4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가 부채를 지속 가능한 수준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증세 등 세수 확충 노력이 필요하다”며 복지 재원과의 연계 방안을 전제로 한 부가세 인상을 주장했다.
이어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도 부가세 인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태석 KDI 인구구조대응연구팀장은 지난달 12일 한 토론회에서 “인구 고령화에 따른 세원 축소와 지출 소요 증가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을 지속해서 수행하려면 부가세 세제 개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팀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국이 소비세 비중을 늘리고 있다는 점을 소개하며 부가세 세율을 12%로 현재보다 2% 포인트 인상하고, 현재 면세 대상인 교육·금융·의료보건 서비스 중 일부 품목을 면세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부가세 인상론은 야당 일각에서도 공감을 얻고 있다.
부가세는 물건이나 서비스값에 포함돼 사업자가 부담하는 세금이다. 간접세 성격이 강하다 보니 납세자들의 조세 저항이 적다. 이 때문에 증세 논의가 있을 때마다 부가세 인상은 단골 메뉴로 거론돼왔다.
하지만 부가세가 물건이나 서비스값에 포함돼 있어 이를 인상하면 물가가 덩달아 오를 가능성이 크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최근 공식 석상에서 잇달아 “물가가 최우선 민생 과제”라고 강조하면서 정부 내에서는 부가세의 ‘ㅂ’자도 거론하기가 어려운 분위기다.
부가세가 납세자의 소득, 재산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부과되다 보니 역진성(고소득자의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음)이 크다는 점도 정부로서는 부담이다. 또 다른 정부 관계자는 “가뜩이나 부동산 세제 개편을 두고 ‘부자 감세’란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부가세 인상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부가세 인상론이 잠잠해지면서 정부의 재정 건전성 회복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미 전 정부에서 400조원 넘게 늘어 1000조원을 돌파한 국가채무(1068조8000억원)를 고려하면 증세를 하거나 지출을 줄이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뾰족한 방안은 보이지 않는다. 올해도 2차 추경까지 포함해 통합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가 70조4000억원 적자 상태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