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만3405㎞. 한국에 있는 도로를 모두 합친 길이다. 지구를 2.8바퀴 돌 수 있는 거리다. 전국 방방곡곡에 도로가 놓이면서 우리는 더 많은 곳을, 더 편리하게 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그만큼 길 위의 ‘불청객’도 더 늘었다.
해마다 무려 1만 마리 넘는 야생동물이 길 위에서 유명을 달리한다. 때에 따라 길 위의 야생동물은 2차 교통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교통안전 측면에서도 상당히 위험한 존재다. 단순히 안타까워하고 말 문제가 아니라 적극 개선해야 하는 이유다. 동물찻길사고(로드킬)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오뉴월에 자주 발생… 대부분은 고라니
“많은 날은 하루에 열 몇 마리씩 수거한 적도 있어요. 지금도 전동면 신중리 인근에 신고 들어와서 곧 출동합니다.”
지난 13일 세종시에서 발생하는 로드킬 현장의 수습을 전담하는 A용역업체 대표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요새 세종시는 그야말로 하루가 멀다고 로드킬이 발생하는 곳이다. A업체 대표가 지난달 길 위에서 수거한 동물 사체만 100구가 넘는다고 했다.
로드킬 신고가 들어오면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사고 수습 용역을 맡은 업체들이 2인 1조로 현장에 나간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인 만큼 경광등을 켜고 때로는 사이렌을 울려서 도로를 통제한 뒤 차를 세우고 현장 사진을 찍는다. 이어 마대자루나 위생봉투에 동물의 시신을 수거한다. 가져간 동물의 시신은 천연기념물의 경우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멸실신고를 하고, 그 외에는 사고 사실을 보고한 뒤 거의 곧바로 소각한다. A업체 대표는 “길에서 죽은 동물을 보면 안타까운 게 어쩔 수 없지만 가만 놔두면 2차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당장 차들이 달리는 현장에서 수습하는 것도 상당히 위험한 작업이기 때문에 다른 생각 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야생동물 활동량이 증가하는 여름철이 되면서 세종시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로드킬 사고가 늘고 있다. 특히 5~6월은 로드킬 사고가 가장 빈발하는 시기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로드킬 사고 7476건 가운데 5~6월에 3055건이 발생해 41%에 달한다.
5~6월에 로드킬이 잦은 건 동물의 생태적 습성과 관련이 깊다는 게 로드킬 분야를 연구해온 국립생태원 송의근 전임연구원의 설명이다. 최근 5년간 고속도로 로드킬 사고 중 85%가 고라니 사고다. 송 연구원에 따르면 고라니는 태어난 지 1년이 지난 여름철부터 부모에게서 독립한다. 대부분 야생동물은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서식지를 옮기는데 이 과정에서 도로를 지나다 사고를 많이 당한다. 너구리나 오소리 등 식육목 동물들은 주로 10~11월쯤 서식지를 옮기다 차에 치이는 경우가 많다.
고라니가 주로 도로나 마을이 인접한 낮은 야산 등에 서식하는 점도 고라니 사고가 잦은 이유다. 4월부터 밭에 올라온 농작물의 싹은 고라니나 멧돼지 등 야생동물에게는 좋은 먹잇감이다. 농지 인근으로 야생동물들이 자주 내려오면서 또 사고가 잦아진다.
강원도보다 3.5배 많은 충청도, 왜?
로드킬은 주로 충청도 지역에서 많이 발생한다. 국립생태원 로드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충청권(충청도와 대전·세종 포함) 로드킬 발생 건수는 총 4850건으로 1370건인 강원도보다 3.5배 많다. 영남권(3374건)보다도 30% 많다. 이와 관련해 송 연구원은 “충청도에 농경지, 초지, 습지 등 로드킬 빈도가 높은 동물 서식지가 많고, 서식지 인근에 도로도 많이 나 있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충청도가 로드킬 정보 수집에 가장 적극 나선 것도 발생 건수가 많다는 이유 때문이다. 로드킬 사고는 한번 발생한 곳에서 자주 일어나는 측면이 있다. 때문에 어디서 사고가 났는지 알아야 그 주변의 생태환경을 분석해서 생태통로, 유도 울타리 등 보완 조치가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인명피해보다 로드킬을 가벼운 사고로 취급하는 문화나 사고가 잦은 곳으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우려 등으로 대다수 지자체는 2018년 로드킬 정보수집용 앱(굿로드) 보급 이후에도 사고 발생 보고에 소극적이다. 반면 충남도는 행정안전부, 티맵 등과 함께 내비게이션을 통한 로드킬 음성 신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등 적극 대응해 왔다.
로드킬 사고를 방지하려면 우선 로드킬 빈발 지역을 지날 때 서행하는 게 좋다. 특히 로드킬이 빈발하는 밤 12시 이후부터 오전 8시 사이는 주의해야 할 시간대다. 도로에서 야생동물을 마주할 경우 핸들을 급격하게 틀거나 급브레이크를 밟는 건 금물이다. 차를 세우기보다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경적을 울려야 한다. 상향 전조등을 켜면 고라니 등 야생동물이 일시적으로 시력 장애를 겪으면서 멈춰 서기 때문에 전조등은 끄는 게 좋다.
동물과 충돌했다고 해서 곧바로 차를 세우고 멈추는 건 가장 위험한 행동이다. 일단 사고 현장을 벗어난 뒤 고속도로면 한국도로공사 콜센터(1588-2504)로, 일반 국도면 다산콜센터(지역번호+120)나 환경부(지역번호+128) 콜센터로 로드킬 발생 사실을 신고하면 된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