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함양은 ‘산(山)의 고장’이다. 1000m급 고봉 34개가 사방을 둘러치고 있다. 북쪽에는 남덕유산의 지맥을 이어받은 산의 무리가 있고, 남쪽은 지리산이 이끄는 거대한 산군(山群)이 펼쳐져 있다.
지리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고, 20여개의 능선 사이로 계곡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가운데 칠선계곡 뱀사골계곡과 함께 지리산 3대 계곡으로 꼽히는 곳이 한신계곡이다.
한신계곡은 깊고 넓은 계곡 또는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계곡이라는 뜻으로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에 있다. 세석에서 백무동까지 여러 개의 폭포를 이루면서 10㎞ 이어진다. 본류 외에도 덕평봉 북쪽에서 발원하는 바른재골과 칠선봉 부근에서 내려오는 곧은재골, 장터목 방향에서 흐르는 한신지계곡 등 4갈래의 물줄기가 임천(엄천강)으로 흘러 남강 상류를 이룬다. 2010년 명승으로 지정됐다.
계곡이 깊은 데다 울울창창한 숲길은 냉장고 속을 걷는 듯 시원해 여름철 트레킹에 그만이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칠선계곡에 비해 한결 부드러워 가족과 함께 즐기기에도 좋다. 세석대피소로 이어지는 막판의 악명 높은 오르막길만 제외한다면 더없이 순하다. 가내소폭포나 오층폭포까지 가볍게 다녀올 수 있다.
들머리인 백무동은 100명이 넘는 무당이 모여들었던 곳이라 백무동(白巫洞), 안개가 늘 끼어 백무동(白霧洞)이라 했다. 신라 시대 화랑의 훈련장소로 이용됐다고 해서 현재는 백무동(白武洞)이라 불린다.
백무동 야영장을 지나 바로 나오는 갈림길에서 세석대피소 가내소폭포 방향으로 직진한다. 왼쪽은 장터목대피소(5.8㎞) 방향이다. 계곡산행이라 해서 처음부터 계곡을 끼고 가는 게 아니라 임도 급의 넓은 산허리 길을 따라간다. 이 길은 1950년대 후반에 벌목한 나무를 실어 나르던 산판 길로 개설됐다고 한다.
완만한 길을 30분가량 오르면 계곡과 만난다. 가뭄으로 수량이 줄었다고는 하지만 차고 맑은 물이 거칠 것 없이 흘러내린다. 너른 암반 사이를 헤집고 흐르는 ‘첫나들이폭포’가 장관이다. 폭포 쉼터에 서면 발아래 수직으로 떨어지는 물줄기가 굉음과 함께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모습이 시원하다. 이 폭포는 세찬 바람이 폭포를 휘감아 바람폭포로 불리다 한신계곡에서 처음 만나는 폭포로 관문 역할을 해 이름을 바꿨다.
이곳에서 가내소폭포까지는 0.8㎞. 계곡에 놓인 나무다리와 출렁다리를 건너갔다 건너오기를 반복한다. 암반을 타고 흐르는 폭포와 소의 비경이 하나씩 속살을 벗는다. 첫나들이폭포 쉼터에서 20분이면 가내소폭포 전망대에 도착한다. 물줄기가 우렁차다. 울창한 숲 아래 함지박 같은 소에 물빛이 검푸르다. 나뭇잎 사이로 내리꽂힌 빚이 영롱한 에메랄드빛으로 반사된다.
자신의 도력을 시험하려고 계곡 양쪽에다 묶은 실 위를 건너던 중 지리산 여인의 방해로 떨어져 실패한 승려가 자신의 수행이 모자람을 깨닫고는 포기하고 가면서 ‘나는 가네’라 한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가내소폭포를 지나면 완만하던 산길이 오르막 돌계단으로 이어진다. 15분이면 나오는 오층폭포 전망대에선 5개의 폭포에서 5개의 소(沼)로 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본다. S자로 꺾이며 흐르는 폭포가 내는 물소리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듯 경쾌하다. 오층폭포 위에 한신폭포가 있지만 등산로 80m 아래 위험한 곳에 있어 다가갈 수 없다고 한다.
함양 읍내에서 백무동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가는 길’에 위치한 지안재는 2007년 국토교통부가 펴낸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소개된 해발 370m의 고갯길이다. 옛날 내륙지방 사람들이 지리산 장터목으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했던 곳이다. 뱀이 몸을 구불거리며 움직이는 형상의 지안재는 약 770m 길이다. 경사가 높아 직선 대신 굽잇길을 만든 것이다. 고개 위에서 내려다보면 올라오는 차량과 내려가는 차량이 곡선을 만날 때마다 멈칫멈칫할 정도로 굽어 있다. 지안재를 넘어가면 오도재다. 정상에 지리산제일문이, 바로 옆엔 지리산조망공원이 자리한다.
지안재 가까운 오봉산과 삼봉산 사이에 시간의 숙성으로 가꾼 체험형 농장(와이너리)이자 정원인 ‘하미앙와인밸리’가 있다. ‘하미앙’은 함양을 부드럽게 풀어 쓴 브랜드다. 지역에서 생산된 무농약 산머루로 와인과 즙을 생산한다. 동굴에는 와인이 익어가고 있다. 와인족욕과 산머루비누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도 할 수 있다. 카페와 레스토랑을 갖춘 주황색 기와의 유럽풍 건물 앞으로 삼봉산 능선이 수려하게 펼쳐진다. 경관이 뛰어나 경남도 민간정원으로 등록됐다.
여행메모
가내소폭포까지 2.7㎞ 1시간 소요
9월 2~11일 함양산삼축제 개최
가내소폭포까지 2.7㎞ 1시간 소요
9월 2~11일 함양산삼축제 개최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경남 함양 백무동탐방지원센터로 바로 간다면 광주대구고속도로 지리산나들목이 편하다. 지안재와오도재를 품은 ‘지리산 가는 길’을 경유하고 싶으면 함양나들목에서 빠지는 게 좋다. 대중교통으로는 동서울에서 백무동까지 가는 시외버스가 있다. 대봉산휴양밸리는 통영대전고속도로 지곡나들목에서 가깝다.
한신계곡 입구에 무료주차장이 있다. 트레킹은 백무동탐방지원센터~세석·장터목대피소 갈림길~‘세석길’ 출입문~첫나들이폭포 쉼터~가내소폭포~오층폭포를 왕복한다. 가내소폭포까지는 편도 2.7㎞. 1시간 남짓 걸린다. 세석까지는 된비알의 험한 길이 이어져 체력에 자신이 없다면 가지 않는 게 좋다.
대봉산 집라인을 타기 전에 5분 남짓 안전교육을 받는다. 셔틀버스 운행시간, 교육시간, 장비 착용 시간 등을 고려해 최소 1시간 이전에 주차장에 도착하는 게 좋다.
함양은 ‘산삼의 고장’이다. 함양산삼축제가 오는 9월 2일부터 11일까지 10일간 상림공원 일원에서 3년 만에 개최된다. ‘Hi-산삼! 당신의 젊음을 응원합니다’를 주제로 산삼관, 함양특산물관, 밤소풍, 저잣거리, 산삼숲, 체험부스, 불로장생먹거리, 야간경관존, 포스트엑스포 등 총 9개 분야의 행사존이 마련된다.
지리산(함양)=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