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드라마 ‘파친코’를 쓴 이민진 작가는 한국인에게 ‘한’과 ‘정’, 그리고 ‘흥’이 있다고 했습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에게도 이런 정서가 있어요. 한국 선교사들이 이걸 잘 이해하고 그분들과 잘 어울려 살면 자연스럽게 복음도 심을 수 있습니다.”
서정운(86) 장로회신학대 명예총장이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소망교회(김경진 목사) 근처 카페에서 인도네시아 선교사들에게 이 같은 당부를 전했다. 서 명예총장은 ‘인도네시아 선교의 개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1973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의 파송을 받아 인도네시아 선교를 시작했다. 그는 18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한인교회에서 열리는 ‘인도네시아 선교 50주년 기념대회’ 주 강사로 참석하기 전 한국을 찾았다. 서 명예총장은 은퇴 후에도 예장통합 순회 선교사로 전 세계를 다니며 후배 선교사들을 격려하고 있다.
일생 선교사로 사는 그가 후배들에게 전하는 당부는 ‘선교지에서 잘 살라’는 단순한 메시지였다. 하지만 여기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잘 살기 위해서는 선교지 문화를 존중하고 알아야 하며 현지 언어에 능통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현지인과 어울려 살아야 복음을 전할 기회도 생긴다.
그는 “인도네시아인의 경우 네덜란드에 의해 340년간 식민 지배를 받으면서 한이 생겼고 고난 속에서도 작은 기쁨을 나누는 흥과 정이 많다”면서 “이런 공감대를 나누는 걸 시작으로 선교사들은 현지인과 잘 살라”고 전했다. 이어 “예수님도 결국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삶으로 복음을 심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답은 명확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복음의 진수도 절대 복잡하지 않고 단순 명료하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진짜일수록 미사여구가 필요 없다. 예수님이 많이 배우지 못한 갈릴리 어부들에게 복잡하게 복음을 전했다면 복음은 오대양 육대주 남녀노소에게까지 확산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서 명예총장은 “독일의 위르겐 몰트만은 20세기 위대한 신학자 중 한 명인데 그 또한 ‘신학의 가장 절박한 도전은 단순성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면서 “선교지에서 선포하는 복음도 단순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복음을 단순하게만 선포하면 선교가 될까. 그는 “진정성 있게, 그리고 단순하게 복음을 선포하면 그 나머지는 성령이 하신다는 걸 믿어야 한다”면서 “우리나라에도 그렇게 복음이 심겼다”고 말했다. 구순을 바라보는 노 신학자는 코로나19로 침체에 빠진 한국교회도 본질을 회복하라고 당부했다.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 로마제국의 박해를 피해 숨은 지하동굴에서, 또 공산주의 정권하에서 기독교의 모든 인프라를 빼앗긴 중국에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복음의 본질만 추구하고 이를 전한다면 결국 성숙한 복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글·사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