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정권 ‘규제 개혁’ 용두사미 되풀이… 윤 정부는 다를까 [스토리텔링경제]

입력 2022-06-14 04:05

역대 정부들이 집권 초기마다 외친 ‘규제 개혁’은 정권 말로 갈수록 용두사미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윤석열정부 역시 “기업을 힘들게 하는 모래주머니를 없애겠다”고 대대적인 규제 개혁을 예고했다. 다만 이전 정부들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실패의 원인을 돌아보고 규제 개혁 청사진을 설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첫 정례회동에서 규제 완화를 논의하고 신산업 분야 규제 33건을 개선키로 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9일 “경제 분야 주요 과제는 부총리인 제가 직접 팀장을 맡고, 경제장관들께서 함께 참여하는 ‘경제 분야 규제혁신 태스크포스(TF)’를 이달 중 출범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이 “(기업들이) 모래주머니를 달고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뛰기 어렵다”고 언급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규제 개혁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정부는 조만간 주요 규제 개혁 과제를 확정한다.

규제 전봇대·손톱 밑 가시·모래주머니…

경제 분야는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를 슬로건으로 삼았다. TF는 현장애로 해소, 환경, 보건·의료, 신산업, 입지 등 5개 작업반을 구성하고 분야별 중요 과제를 발굴할 계획이다. 구체적으로 법인세 인하와 기업 승계 관련 세제 개편, 주52시간제 유연화, 리쇼어링(해외 진출 기업 국내 복귀) 지원 확대, 투자 걸림돌 제거, 첨단산업 조세·재정지원 확대 등이 거론된다.

기업을 옥죄는 불필요한 규제를 없애겠다는 목표지만 현실은 말처럼 쉽지 않다. 과거 정부들이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한 것도 규제 개혁 과정이 생각만큼 수월하게 진행되지 않아서다. 앞서 이명박정부는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고 말했고, 박근혜정부는 “손톱 밑 가시를 제거하겠다”며 굳은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규제프리존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지난 정부의 규제 완화 법안은 결국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 4월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새 정부의 규제 개혁에 대해 ‘기대한다’는 응답은 24.6%로, ‘기대하지 않는다’는 응답 24.0%와 비슷했다. 규제 개혁 성과에 불만족한다는 기업들은 해당 분야 규제 신설·강화(25.8%), 핵심 규제 개선 미흡(24.7%) 등을 이유로 지적했다. ‘보이지 않는 규제 해결 미흡’(19.1%), ‘공무원의 규제 개혁 의지 부족’(18.0%) 등도 원인으로 꼽았다.

관료사회·첨예한 이해관계 극복이 과제

규제 개혁이 매번 용두사미식으로 마무리되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관료사회의 습성과 첨예한 이해관계 등을 들었다. 최현선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규제를 없애면 공무원들이 ‘도장 찍을 일’이 없어진다. 공무원들의 권력이자 권한을 빼앗게 되는 것”이라며 “규제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법제를 바꾸거나 없애야 하는데 그러면 정부부처 내 과나 국이 없어지는 단계까지 간다. 이를 막으려 하다 보니 규제가 계속 남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규제가 사라지면 담당 공무원의 영향력도 줄어들기 때문에 관료사회에서는 규제 개혁을 반기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서비스가 출범하면 이에 따라 규제가 신설되기 때문에 규제 개혁이라는 구호가 반복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준모 건국대 행정학과 교수는 “규제라는 게 해가 지날수록 머리카락처럼 계속 늘어난다. 일정 주기별로 계속 다듬어 나가야 하는 것”이라며 “규제 하나를 풀면 또 다른 규제가 생길 수 있지만, 그 과정에서 규제를 푸는 게 실익이 크다면 계속 규제 개혁 작업을 해나가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신설된 규제로 서비스 확장을 못하는 사업으로는 공유숙박 서비스나 미용·의료 플랫폼, 택시 서비스 등이 대표적이다. 2018년 10월 서비스를 시작한 ‘타다’는 승합차를 기반으로 한 택시 서비스로 1년여 만에 100만명이 넘는 이용자를 모았다. 하지만 택시업계는 타다가 무허가 운송 사업이라고 반발했고, 정부와 국회는 타다금지법을 추진해 2020년 3월 통과시켰다. 결국 국내 모빌리티 시장에는 기존 택시만 살아남았고, ‘택시 대란’까지 불러일으켰다. 법률 플랫폼 ‘로톡’은 대한변호사협회와 미용·의료 플랫폼 ‘강남언니’는 대한의사협회와 각각 충돌하고 있다.


정권 초기 정부는 ‘보여주기식’으로 규제 개혁에 대한 약속을 남발하지만 첨예한 갈등을 빚는 사안의 경우 결국 목소리가 큰 쪽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식의 패턴을 반복하기도 한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다 보니 규제 개혁 동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양용현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장은 “정권 초에는 규제 개혁이 잘 추진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견이 표출되고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결국 막판에는 규제가 그대로 남는다”며 “지지율 추이에 따라 정부가 움직이고, 갈등 요소가 발생했을 때 특정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받아주는 쪽으로 가다 보면 규제 개혁이 힘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는 “창고에 쌓여 있는 규제 개혁 안건이 워낙 많다. 이해관계자 간 갈등도 그렇고, 입법 과정에서도 좌초되는 경우도 상당수”라며 “이번 정부에서 세게 드라이브를 거는 만큼 성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세종=심희정 이종선 권민지 기자 simci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