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혼돈의 금융시장… 비상한 대책이 시급하다

입력 2022-06-14 04:03
세계 금융시장이 대혼돈에 빠졌다. 지난 10일(현지시간) 미국의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8.6%)이 4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뉴스를 접한 뒤 13일 첫 거래일을 맞은 한국 등 아시아 주식시장 대부분이 새파랗게 질린 데다 유럽 각국 증시들도 개장하자마자 급락했다. 악재가 금세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더 큰 문제다. 예상을 뛰어넘은 미국의 물가 상승률로 한때 기대했던 ‘물가고점론’은 자취를 감췄다. 지난달 빅스텝(기준금리 0.5% 포인트 인상)을 밟은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자이언트 스텝(0.75% 포인트 인상) 카드를 고려할 정도로 고물가 저성장의 여파가 길어질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인플레이션 장기화 가능성이 짙어진 만큼 우리도 비상한 대응을 해야 할 때다. 그동안 한 손에는 ‘경기 부양’, 다른 손에는 ‘물가 안정’을 들고 고민하던 당국은 이제 물가에 더 큰 무게를 실어야 한다. 인플레 기대심리가 상승할 경우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게 거시경제 안정 측면에서 바람직하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최근 “금리 인상으로 단기적으로는 취약 계층의 어려움이 커질 수 있겠지만, 자칫 시기를 놓쳐 인플레이션이 더 확산하면 그 피해는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해 8월 이후 5차례나 금리를 올렸음에도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14년 만에 최대로 상승했다. 한은은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4.5%로 예상했는데 이는 중기 물가안정 목표(2%)의 두 배를 훌쩍 웃돈다. 물가 태풍과 맞서기 위해선 이제 한국도 미국처럼 빅스텝 조치를 배제하기 힘들어졌다. 미국과 한국의 금리차가 역전될 경우 올 들어 지속되고 있는 자금 이탈이 심화하면서 금융시장이 더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통화당국에만 인플레 파이터를 기대할 시기를 넘어섰다. 특히 정부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참모들에게 “물가 상승에 선제 조치를 취해달라”고 당부한 것은 시의적절하지만 현 정부 출범 후 눈에 띌 만한 물가안정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수입물가 안정을 위해 할당관세를 적극 활용하고 투자 심리를 안정시킬 대책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금리 상승에 취약한 서민 가계의 부실을 완화해주는 데에도 신경써야 한다. 기업들, 특히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만큼 비용 상승을 상품 가격에 떠넘기는 것을 자제하길 바란다. 물가안정이 경기회복의 지름길이다. 비상한 상황엔 비상한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