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 사건의 숨진 용의자가 소송에서 패한 뒤 앙심을 품고 계획적으로 불을 지른 것으로 조사되면서 일선 변호사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을 소송대리인에게 분출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번 사건처럼 상당수 변호사가 보복범죄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돼 있기 때문이다.
형사 사건을 주로 담당하는 한 변호사는 대구 방화 사건이 터지자 자신이 소송 당사자들에게 겪었던 일들이 다시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소송에서 패한 일부 의뢰인이 사무실로 찾아와 ‘너도 찔러 죽이겠다’ ‘같이 죽자’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며 “사무실 문 앞에 드러누워 변호사비를 돌려 달라고 시위하거나, 목을 조르고 멱살을 잡는 건 흔한 일”이라고 12일 말했다.
대구 참사처럼 자신이 맡은 사건에서는 승소하더라도 상대측 협박에 시달리기도 한다.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성폭행 피해자 변호를 맡아 가해자에게 무거운 형량이 내려지도록 도왔는데, 교도소에 간 가해자가 ‘꼭 찾아가겠다’는 협박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일하는 한 변호사는 “살인 사건의 피해자 측 변호를 맡았는데 정작 살인 혐의는 무죄가 나왔다”며 “이후 풀려난 피고인 측으로부터 조롱하는 듯한 연락에 시달렸고 ‘당신도 그렇게 죽게 될 것’이라는 전화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네 가족은 괜찮을 것 같으냐’는 협박을 받으면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구 방화 사건 이후 혹시 모를 ‘테러’에 대비해 자구책을 마련한 변호사도 있다. 한 이혼 전문 변호사는 “휴대용 스프레이 소화기를 사무실 직원들 책상 옆에 하나씩 구비해 뒀다”며 “로비에 전시해뒀던 사인 야구방망이는 혹 무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사무실 안쪽으로 들여놨다”고 전했다. 서초구의 또 다른 로펌 사무장은 “민원인 응대 규칙을 다시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영업을 위해 사무실 문턱을 낮출 수밖에 없어 출입 통제를 강화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우려도 나온다. 민사소송 전문 한 변호사는 “대형 로펌을 제외하곤 경비 시스템이 허술한 데다, 상담을 원하는 의뢰인일 수 있기 때문에 가려서 받을 수도 없다”고 토로했다.
사건 관계인의 악성 보복 행위가 반복되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보게 된다는 우려도 있다.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앞으로는 사건을 가려서 수임하는 경우도 늘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정말 조력이 필요한 사람이 도움받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형사 변호사는 “변호사들은 실명과 사무실 위치까지 다 공개돼 있다”며 “보복하면 가중처벌하는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법조인협회도 “변호사에 대한 폭언·협박·위해 행위를 엄중하게 처벌하는 법률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대한변호사협회는 “법치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모든 물리력으로부터 변호사들의 안전을 담보하기 위해 즉각 특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이라는 성명을 냈다.
박민지 이의재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