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변호사 사무실 방화사건 피의자 천모(53·사망)씨는 아파트 개발사업 투자로 돈을 잃고 벌어진 잇단 소송에 패소한 데 불만을 품고 범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특히 범행 하루 전 형사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데 이어 범행 약 1시간 전 열린 민사소송에서도 패소했다.
천씨는 2013년 수성구 한 주상복합아파트 신축 시행사와 투자약정을 하고 모두 6억8000여만원을 투자했지만 개발사업이 계획대로 되지 않아 투자금 반환 등을 둘러싼 소송에 잇따라 관련됐다. 그는 시행사 대표이사를 비방한 일 등으로 고소돼 범행 전날인 8일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았고, 범행 1시간여 전에는 한 투자신탁사를 상대로 5억9000여만원을 돌려 달라는 추심금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패소했다.
그는 범행 당일인 9일 오전 재판에 참석했다 귀가한 뒤 아파트에서 휘발유를 들고 법무빌딩 2층 203호로 들어가 불을 질렀다. 범행도구를 가지고 집을 나서 방화를 할 때까지 8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대전에 살던 천씨는 소송 과정에서 혼자 대구로 전입해 수성구 범어동에 있는 5층 아파트에 월세로 살았다. 이 아파트 평균 임대료는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 20만원가량으로 알려졌다.
경찰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천씨를 포함한 사망자 7명의 직접적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라고 1차 소견을 밝혔다.
12일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선 전날 발인한 희생자 1명을 제외한 5명의 발인이 차례로 진행됐다. 일부 유족은 경황이 없는 탓에 상복조차 차려입지 못한 채 오열했다. 유족과 지인들은 “천사를 먼저 데리고 가나” “이래 보내도 되는 건가” “너무 억울하다”는 한탄을 쏟아냈다.
발인을 지켜보던 배모(72) 변호사는 취재진에게 “가슴이 너무 무거워서 뭐라고 표현할 길이 없고, 그 사람들을 생각하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며 “어떤 식으로든 유족들한테 위로가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배 변호사는 방화범 천모씨의 투자금 반환소송 상대방의 변호인으로, 이번 사건 피해자인 김 변호사와 합동법률사무실을 운영했다. 다른 피해자 5명은 두 변호사가 채용한 직원들이다.
사건이 발생한 9일부터 사흘간 이곳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 등 고위 관료와 정치인, 법조인, 일반시민 등 각계각층의 조문이 이어졌다. 발인 후에도 추모 발길은 계속됐다. 사건이 발생한 건물 1층 유리창에는 추모의 마음이 담긴 메모지가 붙여졌다. 시민들이 놓고 간 조화 여러 개도 바닥에 놓였다. 희생자 합동분향소는 13일까지 운영된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