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과학기술혁명시대에도 인문사회교육 필요하다

입력 2022-06-13 04:02

윤석열 대통령이 교육부에 반도체 특명을 내렸다. 개혁의 초점은 기술 발전 수준에 맞춰 교육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인공지능(AI) 교육을 초중고 모든 교과과정에 포함시켜 정보 교육과정과 연계해 디지털 환경에 적용하는 게 목적이다. 지능정보화 사회, 4차 산업혁명, 디지털 대전환에 맞춰 디지털 기초 소양을 강화하고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핵심 역량을 높이는 것이다. 아쉬운 건 인문사회학적 기본 소양에 대한 논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고등교육재정지원은 평균 국내총생산(GDP)의 1.1% 수준이다. 하지만 한국은 0.55%(11조원)에 불과하다. 예산 편성에서도 드러난다. 지난해 이공 분야 기초학문지원예산은 1600억원이 증액됐다.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 예산은 정체돼 있다.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수백만명을 학살한 사건의 총책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에 참석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아이히만이 극히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친위부대 군인으로 단지 성실하게 명령에 따랐을 뿐이지 학살을 주도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아렌트는 누구도 경험할 수 있는 ‘악의 평범성’을 보았다. 누구나 일상에서 의도하지 않아도 악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가장 비윤리적인 실험으로 이를 증명했다. 실험자에게 학습자가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기충격을 줄 것을 명령했다. 실험자는 단순히 윗사람 명령에 따라 학습자가 고통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책임을 느끼지 못했다. 전기충격 강도를 높여나갔고,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멈추지 않았다. 특정한 상황이 만들어지면 이성과 양심을 가진 사람들도 판단력을 상실한다. 생각하는 힘을 키우지 않으면 이런 현상이 더 심해진다.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는 인간은 악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한다.

생각의 부재는 사회도 병들게 한다. 사회심리학자 귀스타브 르봉은 집단심리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군중은 사유하지 않으며 어떤 사상이든 단숨에 받아들이거나 거부하고, 이의와 반론을 견디지 못하는 한편 암시에 쉽게 조종당한다. 그래서 군중은 맹목적 복종과 독선, 과격함에 빠지기 쉽다.” 이런 집단심리는 생각하는 훈련을 경시하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좌우로 갈라져 상대방을 무조건 몰아붙이는 것도 집단심리 때문이다. 반대편에게 좌표를 찍고 공격하고 생업에 종사하는 무고한 시민들을 ‘토착왜구’ ‘빨갱이’로 몰아 공격한다. 또한 도를 넘어선 행동을 ‘민주주의의 양념’ ‘자유민주주의’라 부추기기도 한다. 선동적인 자와 목소리 큰 자들이 판을 치고, 생각하고 사유하는 자들이 침묵을 지키는 현상이 반복된다.

4차 과학기술혁명시대에도 인문사회 분야의 발전은 필요하다. 인문학은 거시적 관점에서 현재 내가 사는 사회의 흐름을 조명한다. 옛 현인들의 눈으로 사회를 통찰할 수 있게 해주고 내가 나아가야 할 길, 우리 사회가 나아갈 길을 알려준다. 사회과학은 사회를 다루는 학문이다. 사회현상을 객관적으로 직시하고 이해하기 위해 가설을 설정하고 실험을 수행한다. 무수히 많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담아내는 건 가능하지 않다. 하지만 인간과 사회의 관계 속에서 다양성을 찾아내면서 객관적 시각을 제공한다. 과학이든 경제든 인간을 이해하지 않는 비즈니스는 성공할 수 없다. 당장의 이익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존재 가치와 경제적 의미를 만들기 위해서는 단지 숫자로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맥락을 통해 문화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생각하는 ‘센스메이킹’이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적 관계를 떠나 살 수가 없다. 모든 변화의 주체는 사람이다. 변화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다. 변화를 만들고 창조한다. 변화와 창조의 안테나는 인문사회를 통해 배양된다. 사람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만들어 내고 사회 공동체의 의미를 찾아내는 것,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 내고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소양을 가치로 만들어 낸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정치에 대한 관심은 점점 무뎌지고, 각종 사회이익을 대변하는 집단 간의 갈등과 대립 속에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 속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는 실종되고 있다. 사회적 연대 의식이 약화되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될 뿐이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을 만드는 균형 있는 인문사회교육이 필요하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