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세계개발자대회(WWDC)에서 새로운 ‘애플 실리콘’ M2 칩셋을 공개했다. 부러운 마음이 가득했다. 애플이 2020년 M1을 발표하면서 PC 시장으로 외연 확대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그게 가능하겠느냐”는 의문 부호가 가득했다. 애플, 퀄컴, 삼성전자 등이 스마트폰 칩셋에 사용하는 영국 반도체 설계기업 ARM의 코어는 PC 영역까지 성능이 올라가기 어렵다는 게 중론이었다. 하지만 애플은 증명에 성공했다. 시장조사업체 가트너에 따르면 전 세계 PC 운영체제(OS) 점유율에서 애플은 지난해 7.9%에서 올해 10.7%까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 PC OS 시장의 절대 강자인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의 점유율을 계속 뺏어오는 중이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자체 칩셋을 통해 향후에 자율주행차, 데이터센터까지 영역을 확대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시스템반도체 내재화에 성공하면서 애플이 새로운 시대로 도약할 모멘텀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애플은 스마트폰부터 자율주행차까지 모든 생태계를 수직통합하는 전무후무한 회사가 된다. 한때 스마트폰 라이벌이었던 삼성전자의 현재 상황과 비교하면 명암이 더욱 도드라진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스마트폰 칩셋 성능은 과거에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삼성전자가 앞설 때도 있었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애플은 성능과 전력 효율이 기하급수적으로 향상된 반면 삼성전자는 성장이 더뎠다. 칩셋 성능 차이는 스마트폰 경쟁력 격차로 나타났고, 미래 신사업에서는 차이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드로이드 진영에서도 삼성전자 칩셋의 위상은 점점 하락하고 있다. 스냅드래곤을 만드는 퀄컴도 애플처럼 PC용 칩셋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선언했다. 퀄컴은 지난해 중앙처리장치(CPU) 설계 스타트업 누비아를 14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PC용 CPU 진출 계획을 본격화했다. 애플의 성공으로 같은 ARM 코어를 쓰는 퀄컴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진 것이다. 출시 일정은 다소 지연되고 있지만, 퀄컴도 스마트폰 외에 PC에서의 입지를 넓혀간다는 방향성은 명확하다.
대만 미디어텍의 약진도 매섭다. 미디어텍은 스마트폰 칩셋 시장에서 중저가 시장을 중심으로 입지를 다져왔던 회사다. 때문에 점유율은 높아도 기술력은 삼성전자에 뒤처진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올해 미디어텍이 ‘디멘시티 9000’을 내놓으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퀄컴 스냅드래곤8 1세대, 삼성전자 엑시노스 2200보다 성능이 좋다는 결과가 나오면서 미디어텍 위상도 달라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사업에서 ‘넛크래커(nut-cracker)’ 신세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기술력이 앞서는 애플, 퀄컴 등 미국 기업뿐만 아니라 대만 기업에도 쫓기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더욱 걱정되는 건 반전 카드가 마땅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삼성전자도 한때 자체 코어 개발에 나섰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관련 조직은 2019년 해체됐다. 최근 엑시노스 2200의 부진으로 다시 자체 코어 개발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단기간에 해법을 찾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다른 방법으로는 퀄컴이 누비아를 인수한 것처럼 외부 역량을 인수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하지만 엔비디아의 ARM 인수 실패 사례에서 보듯이 반도체가 안보 문제가 된 상황이라 인수 문턱도 높다. 세계 1위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에 호락호락 날개를 달아줄 가능성은 작다. 결국 내부 혁신을 통해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밖에 없다. 지금 상태로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가 더 벌어질 게 분명하다.
김준엽 산업부 차장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