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벌어진 변호사 사무실 방화 참사는 민사재판과 관련돼 있었다. 소송 당사자가 패소의 불만을 극단적 형태로 터뜨렸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용의자는 어느 전통시장 재개발 사업에 수억원을 투자했다. 사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이를 날리게 되자 여러 소송을 벌여왔다. 시행사 대표를 상대로 한 투자금 반환소송 1심에서 패하고 항소심이 진행되는 터에 상대방 변호인 사무실을 찾아가 범행했다. 그가 사무실에 침입해 외친 말은 “너 때문에 재판 졌다. 다 같이 죽자”였다고 한다. 민사법정은 사적인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는 곳이다. 거기서 내려진 판단을 그는 수용하지 않았고, 법률 대리인에게 책임을 돌렸으며, 그렇게 품은 증오를 끔찍한 범죄로 표출했다.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로 단순히 넘기기 어려운, 우리 사회의 불행한 단면을 내포하고 있다. 한 사회가 구성원 간의 갈등을 조정하는 마지막 수단인 소송에서 오히려 갈등이 극단적으로 증폭됐다. 한국 사회는 ‘갈등 공화국’이라 불린 지 오래됐다. 지난해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세 번째로 갈등지수가 높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반면 정치와 정부의 갈등 조정 기능은 27위로 최하위권이었다. 이런 까닭에 우리는 ‘소송 공화국’에서 살고 있다. 2000년대 중반 500만건 수준이던 연간 소송 건수는 지금 700만건에 육박할 정도로 급증했다. 분쟁이 생기면 법원으로 달려가는 것이 일상화된 시대에 이런 사건이 터졌다. 갈등 조정의 마지막 보루에 균열이 생겼다는 신호일 수 있고, 법원의 조정 기능마저 통하지 않을 만큼 심각한 갈등 사회가 돼가는 전조일 수 있다.
변호사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분쟁의 복판에서 필수 구성원으로 법정에 참여하며 막연하게 느껴온 위험이 현실로 나타났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사법제도를 위협하는 야만 행위”라고 규정하면서 제2, 제3의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성숙한 시민의식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들이 느끼는 공포는 갈등 조정의 최후 기준인 법치주의마저 위협받고 있음을 말해준다. 예측하기 어려운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아줄 물리적 조치는 많지 않다. 사회 전반에 합리성이 회복돼 갈등 공화국, 소송 공화국이란 오명을 지우도록 지속적으로 정비해 가야 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사건에 담긴 위험 신호를 지나치지 않기 바란다. 정치의 역할, 정부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설] 대구 방화 참사, 갈등 사회의 참담한 단면
입력 2022-06-11 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