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작업, 외롭고 힘들지만 배우의 삶에 환기가 돼”

입력 2022-06-10 04:08
영화 ‘브로커’에서 미혼모의 아기를 거래하는 브로커를 쫓는 경찰 수진역을 연기하는 배두나. 영화사 집·CJ ENM 제공

배우 배두나는 주연을 맡은 영화 ‘브로커’와 ‘다음 소희’ 두 편이 동시에 지난달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받았다. 당연히 칸으로 날아가야 했지만 일복이 터져 레드카펫을 밟지 못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다음 작품을 촬영 중인 배두나와 8일 화상 인터뷰를 가졌다. “칸 레드카펫을 정말 좋아한다”며 웃어 보이는 얼굴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배두나는 “브로커 팀이 부산에서 강릉까지 해안을 따라 돌면서 꾀죄죄한 모습으로 동고동락했는데 턱시도와 드레스를 입고 빛나는 모습들을 보니 좋았다. 멋지게 입고 함께 레드카펫에 서지 못해 아쉽다”며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이 레드카펫 행사 끝나고 ‘우리는 함께 걸었다’며 턱시도 안에 제 스티커를 붙여놓은 사진을 이메일로 보내주셨는데 감동적이고 고마워 촬영 중에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고레에다 감독과는 2010년 영화 ‘공기인형’ 촬영 이후 두 번째로 만났다. 배두나는 “12년 만에 함께 작업해 감회가 새로웠다. 감독님은 그때와 다름없이 귀엽고 날카로웠다”며 “그분만이 뽑아낼 수 있는, 연기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연기가 있다. 이번에도 ‘역시 고레에다 감독’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감독의 철학과 스타일을 보여준 일화도 공개했다. 배두나는 “아기를 안고 있는 뒷모습을 찍어야 하는데 아기가 피곤해 울기 시작했다. 어차피 아기가 보이지 않으니 인형을 들고 할 것인지 현장에서 의논했는데, 감독님께서 ‘등도 연기를 한다’고 말씀하셨다”며 “인형을 안고 있는 뒷모습과 아이를 안고 있는 뒷모습은 다르다. 그런 가치를 아는 감독과 일해 행복했다”고 돌이켰다.

수진역을 소화하기 위해 배두나는 한국어로 번역된 대본과 원어 대본을 대조해 연구했다. 배두나는 “한국어로 의역된 대본으로는 수진의 내면을 잘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감독님께 일본어 대본을 달라고 했다”며 “원어 대본에 있는 대사의 뉘앙스, 말줄임표 등을 보고 캐릭터에 대한 힌트를 얻어 연기할 수 있었다”고 했다.

‘브로커’에 함께 출연한 배우 이지은은 영화 출연을 결정하기 전에 전화를 걸어와 조언을 구했다. 배두나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이지은은 정말 멋진 배우다. 나이가 많고 경력이 많다고 연기를 다 잘하는 게 아니다”며 “다른 배우의 연기를 보고 우는 일이 잘 없는데, 영화 속 이지은의 연기를 보고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배두나는 지난 3월부터 미국에서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 ‘레벨 문’을 찍고 있다. 오랜 시간 해외에 혼자 있는 일은 외롭고 힘들지만 배우의 삶에 ‘환기’가 된다. 그는 “몸과 마음이 힘들어도 새로운 경험을 할 때 만족감을 느낀다.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계속 일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며 “지난 몇 년간 한국에서 촬영할 때는 행복하고 편안했다면, 지금은 정신적으로 강하고 냉정해진 상태”라고 스스로를 진단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