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주를 만난 사람들] 그럴듯한 인생 그리며 해외 유학·좋은 학벌 좇다… 학벌 열등감 벗어나 주님 안에서 진짜 삶 깨달아

입력 2022-06-13 03:04

아빠의 건설업이 순탄치 않아 엄마는 인형 눈알 붙이기, 케이크 데코레이션 만들기, 우유배달, 옷가게, 식당일까지 하셨다. 가난한 6남매로 많이 배우지 못한 아쉬움이 커서인지 큰 딸인 내게 모든 것을 투자했다. 학습지부터 고액 개인과외, 최고의 학원, 유명인터넷 강의까지 수강했다. 돈을 쏟아부은 덕으로 중학교 때까지 성적이 좋았다. 그러나 수준이 높아진 고등학교 때는 노력에 비해 성적은 하향곡선을 탔고, 충격적인 수능점수를 받았다. 친구들은 수도권 4년제 대학에 들어가는데 결국 나는 집 근처 2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어려운 형편에도 좋은 것은 다 시켰는데 얼굴 들고 다닐 수 없는 처지가 되자 엄마는 내가 그 대학을 간 것이 창피하다고 했고 서로 울분이 터졌다. 대학에 입학했지만 모든 것이 다 싫어 M·T도, 오리엔테이션도, 과별모임도 딱 끊었다. 어떻게든 편입을 하겠다는 각오로 2년 대학생활을 학교, 집, 도서관만 오갔고 졸업식에도 가지 않았다. 심각하게 앞길을 고민할 때 일본어학원 원장님이 일본에 가서 공부하는 것을 제안했다. 어렵게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빚을 내서라도 보내주신다고 허락했다.

대출을 받아 일본 유학을 떠나며 생활비는 꼭 내가 해결하겠다는 각오를 했다. 꿈에 그리던 ‘일본대학 교육학과’에 들어갔고 운 좋게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구했다. 꿈과 환상으로 출발했지만 일본 학생들을 따라 잡기는 너무 벅찼다. 일본어 책 한권을 읽고 발표하는 과제 또는 교육의 개념, 시대적 배경, 역사 등을 서술하는 과제들을 할 때엔 꼬박 밤을 샜다. 생활비 절약을 위해 몇 달간 3분 카레에 밥만 먹고, 아르바이트 후엔 유통기간이 지난 도시락이나 김밥을 챙겨가서 먹곤 했다. 몸이 힘든데도 불규칙한 생활, 인스턴트 음식, 스트레스 등으로 1년 만에 체중은 10㎏이나 늘었다. 그러다 아빠 사업이 더 어려워져 대출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 고민하던 중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결국 귀국을 결정했다. 졸업도 못하고 유학생활 3년간 남은 건 불어난 육중한 몸과 만신창이가 된 마음뿐이었다.

좋은 직장도, 괜찮은 남자를 만나는 것도 꿈 꿀 수 없어 다시 2배의 수강료를 주고 명문대 부속 사이버대학에 편입했다. 그러나 몸은 지쳐갔고 주말에 교회에 가서 말씀을 들어도 말씀대로 살지 못하니까 마음은 더욱 힘들었다. 그런데 같이 살던 언니의 모습은 너무 달랐다. 부모님도 안 계시고 돈도 없고 나이도 많은데도 항상 기뻐 찬양하고 눈물을 글썽이며 예수님 이야기를 했다. ‘나도 똑같은 예수님을 믿는데 언니의 삶과 내 삶이 다른 이유가 도대체 뭘까?’ 너무 고민이 되어 언니에게 털어 놓았더니 요한복음을 다시 읽어보라고 권했다.

진지하게 기도하며 요한복음을 읽던 3일 째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다 십자가에 달려 죽고 3일 만에 살아나셨다는 말씀에도 냉랭했는데 ‘부활을 내 느낌과 감정으로 접근하면 죽었다 깨어도 이분을 믿을 수 없다.’고 하셨던 목사님 말씀이 문득 생각났다. 머리가 번쩍하며 ‘아! 내가 지금까지 2000년 전에 실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셨다 가신 예수님을 느껴보려고 하고 있었구나!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앞에 두고서도 믿지 못하고 있었구나!’는 고백이 나왔다. 성경대로 오셨다가 성경대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신 나의 주인이시고 하나님이셨다. 해외 유학까지 가며 악착같이 공부한 것이 죄가 아니라 내가 한번 떵떵거리며 살아 보겠다고 하나님을 마음에서 버리고 내가 주인된 죄, 그 죄를 회개하고 모든 삶을 예수님께 맡기는 사랑의 고백을 드렸다.

삶의 목적이 정확해지니 학벌이란 올무가 한 순간에 끊어지고 이 땅에서 최고의 삶은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니 믿지 않는 주위의 영혼들을 그냥 둘 수 없었다. 작은교회 식구들과 전도를 나가고, 여행을 떠나도 주유소, 식당, 펜션 주인 등 만나는 분마다 잊지 않고 복음의 씨앗을 뿌린다. 언젠가 택시를 타고 복음을 전하는데 “아! 말하지 마요! 뭔 말할지 다 아니까!”했다. 그래도 애교를 떨며 “아버님! 저희가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데 제가 내릴 때까지만 얘기 좀 들어주세용!”하며 복음을 전하고 마지막으로 “우리 꼭 같이 천국 갔으면 좋겠어요!” 했더니 기사님이 갑자기 “오늘 집에 가서 아들하고 며느리 아주 혼쭐을 내야겠어!”라고 했다. “이것들이 열심히 교회에 가며 한 번도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해 준 적이 없어! 지들만 믿고 잘살려 했나? 오늘 저녁에 다들 내 손에 죽었어!” 하셨다.

그 후, 하나님께서 신실한 남편을 만나게 해 주시고 두 아이를 선물로 주셨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우리 부부는 삶 속에서 순간적으로 부딪힘이 있지만, 함께 주님이 주시는 말씀을 잡고 더 뜨거운 사랑으로 서로를 품는다. 어머니도 지금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네가 그 때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가 떵떵거리고 산다면 지금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 거라며 기뻐하신다. 해외 유학과 좋은 학벌이 그럴싸한 인생이 아니라 예수님 안의 삶이 진짜 기쁨의 삶이다. 학벌의 열등감에서 참 자유함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최혜신 성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