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후원금 들어올 정도… “따뜻한 마음 담아 대접해요”

입력 2022-06-13 03:05
홍택주(가운데) 대전 베델루터교회 목사와 봉사자들이 지난 7일 대전시 동구 대전로 나눔의집에서 주방을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대전 베델루터교회 홍택주(67) 목사가 하루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찾는 대상은 두 가지다. 매일 새벽 5시 기도로 하나님을 만나고, 이후 대전역 인근의 루터교 대전봉사센터 나눔의집으로 이동해 노숙인 홀몸노인 같은 소외된 이들을 섬긴다.

매일 아침 7시면 나눔의집 앞 좁은 골목길엔 80여명의 줄이 길게 늘어선다. 하루 한 끼 때우기조차 버거운 이들에게 이곳에서 나눠주는 아침 도시락은 하루를 시작하는 큰 힘이 된다.

홍 목사를 만나기 위해 지난 7일 이곳을 찾았다. 현장에서 만난 한 성도는 “단순히 음식이 맛있고 좋아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 거라 보지 않는다”며 “맛을 떠나 따뜻한 마음과 정성이 느껴지고 뭔가 제대로 된 밥을 먹는 것 같아서 온다는 이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1998년 5월 이곳에서 20여분 떨어진 동구 용전동의 한 인력사무소 앞에서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새벽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한 이래 홍 목사는 24년이 넘도록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세상의 소외된 이들을 섬겨왔다.

나눔의집 앞에 도시락을 배식받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홍 목사는 “사역이 알려지며 곳곳에서 받은 후원으로 나눔의집을 운영 중”이라며 “절에서도 후원금이 들어오고 교파를 초월해 지역 목회자들과 함께 연합해 사역하니 자연스레 ‘에큐메니컬’(교회일치운동)이 이뤄진다”며 웃었다.

홍 목사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라는 특이한 이력을 가졌다. 94년 현 베델교회를 맡기 전까진 하나님이 아닌 국가에 충성을 다짐했던 그였다. 중령 진급을 앞두고 아침마다 새벽 기도를 나가던 당시 그의 마음에 ‘깊이 하나님을 만나고 싶다’는 소망이 깃들었다. 마침 인사 발령도 원치 않던 곳으로 났다. 순복음영산신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다 온 동기생이 그의 고민을 알고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최자실 목사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동기생 아내가 최 목사의 비서였던 터였다. 최 목사는 안수 기도를 해준 뒤 대뜸 “주님이 부르신 지가 언제인데 아직 머물고 있냐”며 다그치셨다.

홍 목사는 “나이 마흔에 그저 이렇게 살다 천국 가는 건 아닌 것 같아 그 길로 바로 전역서를 제출하고 신학교에 입학했다”고 고백했다.

목회자의 길에 들어선 그에게 하나님은 아무 연고도 없는 대전 땅으로 이끄셨다. 홍 목사가 처음부터 낮은 자세로 소외된 이들을 섬긴 건 아니었다. 교회 부흥만 생각했던 목회자였고 자신의 설교가 문제가 아니라 교회를 떠나는 성도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그였다. 목회가 왜 이리 힘드냐며 원망하며 기도하던 그에게 하나님은 점점 깨달음을 주시며 낮은 자리로 이끄셨다.

당시 15명 남짓한 성도들에게 헌금은 오로지 교회 본연의 사역에만 쓰고 사례비를 받지 않겠노라고 선언했다. 사역에 방해받지 않고도 생계를 꾸릴 일을 찾다가 새벽 인력시장에 나가게 됐다. 일당 5만원짜리 잡부 활동을 하며 생계가 어려운 이들의 형편을 알게 됐다. 98년 ‘IMF 사태’가 터졌다. 인력시장에 나온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라면이라도 끓여주며 섬겨야겠다 싶어 그의 아내와 같이 시작한 사역이 지금에 이르렀다.

무료 급식을 위해선 매일 쌀 15㎏씩은 기본으로 들어 비용 부담이 만만찮지만, 매번 때를 따라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만났다. 미국과 독일의 루터교회로부터 지원을 받아 ‘나눔의집’ 건물을 세워 운영할 수 있게 됐고, 2004년엔 국제루터교회의 지원으로 주거 지원과 자활을 위한 ‘평화의집’도 열었다. 코로나19로 개별 도시락 배급을 하게 되면서 비용 부담이 늘었을 땐 루터교세계연맹의 도움을 받아 사역을 이어갈 수 있었다.

지난해 추석, 소외된 이웃을 위해 준비한 특별 급식이 개별 도시락으로 포장된 모습. 나눔의집 제공

홍 목사는 “때를 따라 ‘딱딱’ 연결해주시는 주님을 보며 처음엔 신기했는데 매번 느끼다 보니 이젠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의 이 같은 섬김은 사회로부터도 인정을 받았다. 2001년 시민단체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로부터 봉사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 청와대로부터 ‘국민에게 희망을 준 사람들’에 선정돼 김대중 당시 대통령도 만났다. 이듬해엔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지난해엔 사단법인 대전나눔과평화를 발족해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사역을 펼치고 있다. 이사장을 맡은 홍 목사는 정부 지원 없이 초교파로 연합해 운영하려 한다. 모든 사역의 궁극적인 목적은 소외된 이들이 주님을 만나게 하는 것인 만큼 사람들에게 마음껏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삶의 나락에 떨어졌다가 자활에 성공하거나 자활 중인 이들로 주로 구성된 베델교회 성도들도 홍 목사를 따라 사역에 헌신한다. 그가 성도들에게 늘 강조하는 건 함께 나누는 공동체의 삶과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다.

홍 목사는 “교회는 성도 간 교제가 없으면 헛것이라고 본다”며 “서로 사랑하고 격려하는 공동체, 주님이 기뻐하시는 공동체를 만드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옆에 있던 정윤희(70) 집사는 “한결같이 믿음을 삶으로 실천하시는 목사님”이라며 “그저 하나님 뜻을 전하는 전달자로서 봉사할 뿐이라는 목사님을 보며 교인들도 목사님을 더 신뢰하며 따르게 된다”고 거들었다.

홍 목사에게 군 출신 목회자로서 갖는 장점과 목회철학을 물었다. “국가든 하나님이든 명령에 복종하는 건 체질 같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그저 순종하는 마음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자기를 내세우기보다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고 주님 주신 은총에 대한 감사가 삶의 고백으로 나타나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대전=글·사진 임보혁 기자 bosse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