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3가 단성사는 1907년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 상설 영화관이다. 바로 그 앞에 ‘6·10 독립 만세운동 선창 터’라고 쓴 표석이 있다. 96년 전인 1926년 오늘,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국장행렬이 창덕궁 돈화문을 떠나 이곳을 지나던 중 중앙고보생 수십 명이 이선호 학생의 선창으로 ‘조선독립 만세’를 외친 것을 기념해 서울시가 1991년 세웠다. 학생들 선창을 시작으로 전국 곳곳으로 번져 나간 만세운동은 3·1운동, 광주학생운동에 이어 3대 독립운동으로 불린다.
1987년 오늘, 한국 민주주의의 기념비적 사건으로 기억되는 6·10 민주항쟁도 6·10 만세운동과 비슷한 면이 많다. 국권을 빼앗긴 순종의 죽음이 6·10 만세운동 거사의 모티브였다면 민주항쟁은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사건과 연세대생 이한열 최루탄 피격 사망 사건이 촉매제가 됐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 벌어진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건물은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경찰로부터 넘겨받아 민주항쟁의 성지인 민주인권기념관으로 탈바꿈시켰다.
만세운동이 민중계몽 및 사회주의 운동 학생 조직인 학생과학연구회가 주축이 됐다면 민주항쟁은 1300여명이 구속된 1986년 건대 사태 이후 지리멸렬해진 주사파 성향의 지하서클 조직을 대중조직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로 재탄생시켰다. 광화문 촛불집회 덕에 문재인 정권이 탄생한 정황과 비슷한 셈이다. 전대협은 1990년 한 여론조사에서 여당인 민주자유당과 야당인 평화민주당에 이어 한국을 움직이는 단체 3위에 오를 정도로 위상이 강화됐다. 요즘 86(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에 다닌 세대)그룹으로 불리는 전대협 주도세력은 1997년 김대중 정권 창출과 2002년 노무현 정권 재창출로 권력 전면에 등장했다. 그러나 386부터 시작해 세월의 흔적을 따라 486, 586으로 앞자리 숫자만 바뀌었을 뿐 학생운동 당시 순수성과 이상은 온데간데없이 불통과 내로남불만 남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