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기레기 퇴치 프로젝트

입력 2022-06-11 04:07

‘기레기’라는 조어가 생긴 지 꽤 시간이 흘렀다. ‘짭새’나 ‘국개의원’처럼 특정 직업군을 비하하는 조어 중에 기레기만큼 지금까지 활발하게 쓰이는 단어는 없는 듯하다. 뉴스 댓글에는 어김없이 기레기가 등장한다. 리포트래시, 노룩뉴스도 데이터베이스를 꾸준히 쌓아나가며 원조 기레기 아카이빙 사이트로서 입지를 다져나가고 있다.

최근 기레기들은 온라인을 넘어 전시의 영역까지 진출하며 심판대의 스펙트럼을 넓혔다.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체(서울민예총)의 ‘언론개혁을 위한 예술가들의 행동전’에 전시된 작품이 그 주인공이다. A작가의 ‘ㄱㄷㄱㅌㅊㅍㄹㅈㅌ(기더기 퇴치 프로젝트)’다. 가짜뉴스를 생산했다고 지목된 기레기 100여명의 우스꽝스러운 캐리커처가 전시관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는 작품이다. 소속 매체와 실명도 함께 기재돼 있다.

한국기자협회와 해당 작품에 소속 기자 얼굴이 실린 매체들은 명예훼손이라며 법적 대응을 예고하고 나섰다. 전시회 참여 작가들은 언론계 대응이 예술의 자유를 탄압하는 권력자들의 시위라며 반박했다. A작가는 작품에 실린 기자들의 기사가 가짜뉴스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작업을 거쳤으므로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는 “언론개혁에 관한 비평 카툰은 있었지만 기자 개인을 상대로 한 작품은 미술사에 없었다”고 말했다.

기자 개인에 대한 신상털이는 사실 새롭지 않다. 온라인상에서는 기자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들이 쏟아진다. 기자의 이메일로는 성희롱은 물론 가족을 거론하며 협박하는 이메일까지도 도착한다. 이 정도의 기레기 취급은 일상이 됐다. 정치인이 카메라 앞에서 “이러니까 기레기 소리를 듣지”라고 소리를 지르거나, 장관이 페이스북에 기자 실명과 전화번호를 박제해 좌표 찍기를 하는 기행에 가까운 일들 정도가 돼야 새롭다.

그런 와중에 A작가의 전시는 실로 참신한 형태였다. 지지자들을 등에 업은 정치권 인사들의 기레기 공격은 종종 있었던 일이지만, 예술의 형식으로 ‘이들은 기레기입니다’라며 얼굴과 실명을 공공장소에서 공개한 것은 그간 보지 못한 방식이었다. A작가 작품에 실린 기자들 중 일찍이 그가 그린 캐리커처를 아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만의 공간에서 공유되고 있었고, 그야말로 표현의 자유이므로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캐리커처가 공연(公然)히,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지할 수 있는 상황에 놓이면서 이야기는 달라졌다. 사적인 영역에서 ‘이런 기레기들’하고 욕지거리를 하는 것과 공공장소에서 ‘이 사람들은 기레기입니다’라고 전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실린 기자들 중 허위임을 명백히 인지하고도 의도적으로 허위기사를 보도한 기자가 있는지, 취재 과정에서 현저히 부실한 취재가 인정돼 언론중재위원회나 법원에서 책임을 물은 경우가 있는지 궁금해진다. 만일 그렇다면 A작가의 비판처럼 기레기라 불려도 할 말이 없다.

예술 작품에 그런 빡빡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민예총의 작가들이 예술의 자유를 주장하듯 기자들도 언론의 자유를 주장할 수 있다. 한쪽으로 치우친 취재, 틀린 사실관계를 보도하는 것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공공연한 방식으로 기자들을 비판 아닌 비난하는 일들이 쉬워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기사라고 신상을 털고 모욕할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혐오 받아 마땅한 직업군도 이 세상에는 없다. 혐오와 비난이 쉬워지면 기자들은 논쟁적인 사안에 접근하는 것을 꺼릴 것이고, 무미건조하고 안전한 기사를 원하게 될 것이다. 최순실을 집요하게 취재했던 기자들이 지금의 기레기들과 다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적폐청산 할 때는 기자였다가 조국 사태 이후로 갑자기 기레기로 퇴화한 것일까.

언론에 대한 신뢰가 바닥에 떨어졌고, 기자가 아닌 기레기로 불리는 일이 더 많다는 사실은 물론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결과를 가져온 포털의 성장, 폭발적인 매체의 증가, 초단위로 빨라진 정보 유통 등 다양한 층위의 변화도 무시할 수 없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기자 개인을 향해 화살을 돌리는 것인 건 알겠다. 그러나 그런 방식으로 기레기를 심판해서 좀 더 정의로운 언론 환경이 만들어졌나. 혐오의 방식만 진화했을 뿐이다. 이번의 기레기 전시전처럼 말이다.


이가현 온라인뉴스부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