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150명의 예술가를 만나고 있다. 1시간에 여섯 명씩, 하루 6시간 또는 7시간 동안 인터뷰가 계속된다. 10월에 있을 ‘브리즈 아트페어’를 위해 90명의 예술가가 필요한데 652명이 지원했고, 지난 몇 주 동안 이들의 모든 포트폴리오를 살펴본 후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연락을 한 것이다. 아트페어 디렉터로서 매년 한 번씩 있는 일이지만 가장 설레고도 어려운 기간이다.
인터뷰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방불케 한다. 서울과 경기는 물론 부산 울산 청주 대전 전주 등 전국에서 예술가들이 온다. 1958년생부터 2001년생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올해는 일본과 중국 국적의 참가자들도 있다. 몇 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자신의 작업을 잘 설명하기 위해 직접 작품을 몇 점씩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평소 회의실로 사용되던 좁은 인터뷰 장소는 평면, 회화, 설치 등 시각예술 작품들의 즉흥 전시장이 되고, 뜨거운 열기로 가득하다.
“폐허가 된 공간에 피어나는 들풀들의 생명력이 저의 관심사예요.” “색을 빼고 모노톤으로 세상을 바라보려고 해요. 요즘엔 너무 꾸며진 것들이 많잖아요.” “한지를 손으로 찢은 후 모서리를 태우는 방식으로 동양적 산수를 표현하고 있어요.” “느낌이 좋아서 리놀륨 판에 그리고 있어요. 포인트가 될 만한 선들은 조각도로 파내기도 하고요.” “이끼를 관찰하고 실을 떠서 표현해요. 이끼는 푸르고 매끄럽고 좋은 것이에요.”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 때문에 저는 매번 그때로 돌아가 행복을 꿈꾸며 그림을 그려요.”
한 명의 예술가는 하나의 세계다. 우리와 같은 세상에 살지만 조금 다른 세계에서, 그들은 각자 다른 경험과 이유를 가지고 무언가에 몰두하고 있다. 우리가 그냥 지나치는 것들을 붙들고 밤과 낮을 보낸다. 아무것도 없던 캔버스 위에서, 심지어 공중에서, 수없이 많은 실험과 실패를 하며 무언가를 만들어간다. 날마다 반복해 정진하는 일이 그렇듯, 나아가는 기쁨과 외로움을 알게 된 사람들이기도 하다. 혼자 작업실에 들어앉아 누구도 요청하지 않은 일을 정교하게 정성들여 수행하는 일에는 정답도 끝도 없고 오직 스스로의 기준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어느 날 수줍게 문밖으로 나선다. 바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무관심했던 어떤 대상, 어떤 감정, 어떤 삶의 방식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은 어때요?’라고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이다. 용기가 필요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예술가들이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볼까?’ 하며 작품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은 참 드물다. 자세한 설명도 유려한 말솜씨도 없이 자기만의 표현이 담긴 작품으로 누군가의 마음에 가닿기란 애초에 어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작품이 팔리는 일은 더욱, 예술가와 관객의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순간에 벌어지는 기적 같은 일이다.
인터뷰의 마지막에는 아트페어에 왜 참가하려는지 묻는 편이다. “제 작업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이해하는지 듣고 싶어요.” “혼자 작업하다 보니 외로워요. 동료 예술가들의 작품도 보고, 교류하고 싶어요.” “제 작품을 사려는 사람이 있는지 궁금해요.” 혼자의 시간이 작업의 고유성을 만들어주지만 결과물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보고 듣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권함으로써 예술가가 된다. 그들이 던지는 이야기, 만들어가는 세계는 매우 사소하고, 매우 중요하고, 매우 흥미롭다.
나는 한꺼번에 많은 세계를 빠르게 돌아보다가 놀라운 상상과 재치에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외면하고 싶던 현실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과 경고에 가슴이 철렁하기도 한다. 매일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수십 개의 세계를 만나고 돌아오면 기진맥진한다. 그러면서도 예술가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세계에 최초로 방문해 작은 목소리로나마 “당신이 있어 다행이에요”라고 응원할 수 있어 기쁨이 차오른다. 물론 모든 인터뷰 대상자를 아트페어에 소개할 수 없는 아쉬움도 나의 몫이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