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가수 아이유만큼이나 배우 이지은도 자연스럽다. ‘드림하이’ ‘최고다 이순신’ ‘나의 아저씨’ ‘호텔 델루나’ 등 여러 편의 드라마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해 온 이지은은 첫 상업영화 출연작 ‘브로커’로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았다.
“‘내가 과연 송강호 선배님 앞에서 기절하지 않고 면대면으로 연기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이 가장 먼저 들었다. 그런 경험은 연기를 계속한다고 쉽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7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이지은은 ‘브로커’로 올해 칸 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대선배 송강호와 작업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송강호 선배님과는 연기하기 직전까진 가장 떨리고 시작하면 가장 안 떨렸다. ‘이렇게 연기를 지켜봐 주시고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면 나도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이번 작품에서 이지은은 주인공 소영역을 맡았다. 소영은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린 미혼모다. 이지은은 “다음 작품에선 엄마 역이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그 시점에 소영역을 제안받았다. 출산을 경험해 본 사람, 그런 고비를 넘긴 사람의 감정선을 이해해보고 싶었다”며 “연기는 했지만 실제론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전부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다른 엄마 역할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지은은 영화를 만든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오랜 팬이다. 그는 “감독님을 많이 귀찮게 했다. 대본에 나와 있지 않은 소영의 과거, 소영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선택에 후회가 없는 인물인지 계속 물었는데 애매한 지점 없이 대답해주셔서 많이 의지했다”며 “첫 상업영화이고 어려운 역할이었다. 아무것도 보여드린 게 없는데 큰 역할을 맡겨주셔서 걱정이 많았다”고 돌이켰다.
칸 영화제에 참석하기 위해 니스 코트다쥐르 국제공항에 도착한 이지은에게 프랑스 팬들이 몰려든 장면은 화제가 됐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이지은은 “프랑스에 팬이 있을 줄 몰랐는데 많은 분이 환대해주셔서 놀라고 얼떨떨했다. 몰래카메라 같았다”고 회고했다.
이지은은 “레드카펫에서 팬들이 CD에 사인해 달라고 할 때는 ‘CD는 어떻게 사셨을까’ ‘직구하셨을까’ 하는 생각도 짧게 스쳤다”며 “유럽에서 공연한 적도 없고, 퍼포먼스를 화려하게 하는 가수도 아니다. 언어에 많이 기대어 음악을 하는 편이라 언어의 장벽이 있을 텐데 제 음악을 들어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다”고 전했다.
음악도 만들고 연기도 하는 이지은에게 배우라는 직업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연기를 하면 살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한 지점이 건드려진다. 사람이 어느 시점부터는 관성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며 “사회 이면에 대한 생각, 이번 영화에서처럼 미혼모나 엄마에 대한 생각은 연기가 아니면 생각할 기회를 찾기 어려운데, 연기를 하면서 생각하게 되는 게 좋다. 그게 저라는 사람을 굴러가게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배역은 이지은을 ‘가수 아이유’로부터 해방하곤 한다. 이지은은 “‘호텔 델루나’의 만월은 가수 아이유의 이미지로부터 가져올 수 있는 스타일링과 과한 설정들이 있었다면 ‘나의 아저씨’의 지안이나 ‘브로커’의 소영은 아이유여선 안되는 인물이었다”며 “목소리나 외모가 아이유가 아니어도 될 때 느끼는 편안함이 있다”고 털어놨다.
연기를 하면 같은 목적을 가진 팀에 소속돼 있다는 느낌이 들어 좋다고도 했다. 이지은은 “곡 작업도 팀 단위로 하지만 앨범 프로듀싱을 맡은 이후로는 외로운 순간이 찾아왔다. ‘내게 이 모든 걸 결정할 능력이 있나’ 생각이 들어도 팀원에게 티 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도 있다”며 “드라마나 영화를 할 때는 감독, 작가, 배우에게 명확하게 역할이 주어지는 면이 안정감을 준다. 모르던 사람들이 작품을 하는 동안 하나의 목표를 갖고 같이 간다는 그 느낌이 좋다”고 했다.
소영을 연기하는 건 배우 이지은이지만, 고레에다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소영이 아기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신을 일부러 넣었다. 이지은은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계산을 많이 했다. 너무 잘 부르면 영화에 몰입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고 일부러 못 부르는 척하면 작위적일 것 같아 기교를 빼고 음정만 맞추는 느낌으로 했다”며 “영화를 보시고 자장가 신이 인상적이었다는 분이 많은데 ‘가수니까 잘했겠지’하는 생각을 보태서 좋게 들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