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지방선거를 치른 지 일주일 지났다. 이번 선거의 핫플레이스는 단연 경기도였다. 대한민국 인구 4분의 1 이상이 여기에 거주하며, 유권자는 약 1149만명으로 전체 유권자의 26%를 차지하는 곳이다. 경제력을 나타내는 지역총생산(GRDP)도 전국 1위다. 정치 지형에 있어 경기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결코 작지 않음을 의미한다. 지금까지 8번의 민선에서 여당이 5번, 야당이 3번 도지사로 당선됐다. 특히 이번 경기도지사 선거는 정치는 생물임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상황 조건까지 뒤섞이면서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선거는 이른바 바람이라 불리는 구도, 정책, 인물의 세 가지에 의해 결정된다. 경지도지사 선거를 아우르는 구도는 장군 멍군이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대통령 당선의 프리미엄이 있었고,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얼마 전 대선에서 지지율이 5.3% 포인트 높게 나온 지역에서 치렀다. 다른 주변 상황을 종합하면 국민의힘이 다소 유리한 선거 구도였음은 분명하지만 구도가 선거 결과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크게 작용하지는 않았다. 정책 측면에서는 이목을 집중할 만큼 진보와 보수의 색깔이 뚜렷하게 묻어나는 차이를 찾기 어려웠다. 대체로 주택, 교통, 일자리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인물은 중량감에서 차이가 분명 존재했다. 그래서 김동연 후보는 인물론을, 김은혜 후보는 대통령과의 연결고리를 강하게 밀어붙였다. ‘중도 성향의 경제전문가를 앞세운 일꾼론’과 ‘김은혜가 하면 윤석열정부가 한다’는 슬로건이 맞붙었다.
초접전 속의 대역전 끝에 김동연 후보가 8913표, 0.15% 포인트 차이로 문자 그대로 신승했다. 선거 다음 날 실시한 한국갤럽 조사에서 김 당선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가장 기대되는 인물’로, 김은혜 후보는 ‘가장 아쉬운 낙선 후보’로 꼽혔다. 경기도지사 선거가 얼마나 뜨거웠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김은혜 후보는 졌지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냈다. 국회 입문 2년 만에 체급을 단숨에 키웠다. 거물급 인사인 김 당선인과 견줘볼 만한 전국구 인물로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그는 바로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방을 축하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시인하고 다음을 준비하는 진지한 자세를 보였다. ‘제가 많이 부족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다음 날부터 호응이 적었던 지역을 다니며 도민들에게 낙선 인사를 했다. 설사 그것이 정치적 행동이라 하더라도 진정성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이긴 선거다.
초박빙의 과열 선거였음에도 두 후보 모두 근거 없는 네거티브를 하지 않았던 것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상대 후보의 정체성을 후벼 파면서 감정의 골만 깊어가는 구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하기에 경기도지사 선거 결과는 누구를 지지했든 쿨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 모든 과정은 여야 모두에 자만보다는 겸손, 폭주보다는 견제, 일방보다는 균형을 가르쳐준 경기도 도민의 작품이다. 최종 승자는 경기도민이다. 절묘한 결정을 내린 경기도민의 승리인 것이다.
경기도를 주목한다. 자치와 협치가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아주 흥미롭게도 경기도의회 구성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같은 의석수를 차지하면서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장이 펼쳐졌다. 감동의 스토리를 많이 지닌 김 당선인은 선거 과정에서 경기도가 발전하고 도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진보와 보수, 내 편과 네 편이 어디 있겠느냐며 ‘경기도형 정치 모델’을 만들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협력이다. 시대정신이란 어떤 의미에서 다급히 갈구하는 시대의 결핍이라 할 수 있다. 다양한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 홀로 일방적으로 오롯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반 없다. ‘협력이 세상을 살린다.’ 뻔한 구호이지만 그래서 더 절박하다. 선거 공약 이행에 있어 중앙정부와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윤석열정부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잣대의 하나도 경기도와의 협력이다. 정치가 자치를 옥죄기보다는 크고 넓게 열어주는 협력의 모형을 모두는 기다리고 있다.
권력물신주의에 빠져 있는 작금의 척박한 상황에서 경기도의 지방선거가 한국 정치의 창조적 파괴를 만드는 시금석이길 기대한다. 권력물신주의가 만들어 놓은 진영 논리와 편 가르기 행태는 김 당선인의 책 ‘있는 자리 흩트리다’처럼 흩트려졌으면 한다. 모두가 이긴 선거이기에 이런 기대를 한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