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에 맞서 싸웠던 젊은 지성 헬무트 틸리케의 책 ‘신과 악마 사이’는 우리 안의 심연을 응시하는 눈빛입니다. 혼돈의 어둠 속으로 버둥거리며 추락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재와 미래, 우리의 적나라한 실존을 파고드는 불빛입니다. 이 책과 함께 자기 안의 낭떠러지를 직시하게 된 사람들에게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감지되는 손길이 있습니다.
추락하는 우리를 붙들어 주는 손입니다. 호흡을 고르고 악의 정체를 분명히 볼 수 있도록 우리를 격려하는 손입니다. 광야에서 사십 일 밤낮을 버텨 낸 빈손, 교묘하고 압도적인 시험을 이겨 내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힌 두 손입니다. 그 손만이 광야의 시험에서 우리를 지켜줄 수 있습니다. 오로지 그 손을 의지해 광야로 들어갈 때 ‘나의 투쟁’(히틀러)의 광기와 폭력에 휩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투쟁과 맞서 싸운다는 미명 아래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습니다.
1938년 청년 틸리케는 나치 권력의 오만하고 거친 횡포에 절망했습니다. 그런 나치에 순순히 동조하는 대학과 교회를 보면서 더더욱 절망했습니다. 그럴수록 온 힘을 다해 저항했습니다. 어떤 강압과 협박에도 흔들리지 않는 투사의 모습을 견지했습니다.
그러나 골방에서 마주한 그의 속사람은 비참할 정도로 휘청이고 있었습니다. 가장 절망적인 것은 자신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리에서 그가 철저하게 새로 읽게 된 것이 예수의 광야 시험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와의 치열한 씨름이 그를 새롭게 빚어냈습니다.
바로 거기서 그는 악마의 실체를 꿰뚫어 볼 수 있었습니다. 입으로는 전능의 하나님을 내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줄줄이 늘어놓지만, 사실은 하나님마저도 자기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것이 악마의 교묘한 전략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당시 교회가 불의한 권력을 적극적으로 비호하고 나선 정황이 훤히 드러났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그런 교회를 격하게 비판하는 자기 마음속에도 거대한 탐욕의 도성 바벨론이 자리하고 있다는 깨달음 앞에서 그는 전율했습니다. 자기 안에 있는 거대한 낭떠러지를 본 것입니다. 그 낭떠러지는 악마의 압승이 예견된 자리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거기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필이면 그 낭떠러지로 들어가신 것입니다. 육신을 가진 모든 인간이 비틀거리며 떨어질 수밖에 없는 곳, 다시는 살아서 나올 수 없는 곳만 같은 그 자리가 예수와 만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그 만남이 깊은 성찰 속에서 글로 빚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글이 틸리케를 새롭게 빚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