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배추 54.6%·쇠고기 27.9% 급등… 치솟는 ‘밥상 물가’ 공포

입력 2022-06-08 04:12
시민들이 7일 서울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달 양배추 가격은 1년 전보다 54.6%, 수입 쇠고기는 27.9%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올해 1분기 소득 하위 20% 가구는 가처분소득의 42.2%를 식료품 구입이나 외식에 쓴 것으로 조사됐다. 연합뉴스

채식주의자(비건)인 직장인 이모(33)씨는 요즘 장보러 가기가 겁난다. 매 끼니에 빠지지 않는 배추·무 가격이 급등한 탓이다. 채소로 끓인 찌개와 배추·무를 함께 볶은 요리가 이씨의 주식이다. 매일 챙겨 다니는 샐러드 도시락도 이제는 부담이다. 밖에서 사 먹기 부담돼 도시락을 싸기 시작했지만 양배추와 드레싱 가격마저 올라 장을 보는 비용과 사 먹는 비용이 비슷해졌다.

이씨가 겪는 상황은 통계로 입증된다. 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양배추 가격은 1년 전보다 54.6% 올랐다. 브로콜리(12.3%) 아보카도(18.0%) 등 다른 채소값 역시 오른 건 매한가지다. 이씨는 “매일 먹는 식재료 가격이 빠르게 오르는 게 무섭다”며 “두유와 오트밀 우유 3개월 치를 미리 사놨다”고 토로했다.

먹거리 물가 부담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각종 신선 농산물 가격이 오른 데 이어 조미료 등 가공식품 가격마저 고공행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소금(30.0%) 간장(18.4%) 식용유(22.7%) 등이 두 자릿수 물가 상승률을 기록했다. 통계청이 집계한 가공식품 73개 품목 중 69개 품목 가격이 1년 전 대비 상승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영향 등으로 상승한 원자재 가격이 가공식품 전반의 물가를 끌어올렸다.

고기를 좋아하는 ‘육식족’도 물가 상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달 축산물 가격은 1년 전보다 12.1%나 올랐다. 안 오른 품목을 찾기 힘들다. 수입 쇠고기(27.9%) 돼지고기(20.7%) 닭고기(16.1%) 햄·베이컨(10.6%) 기타육류가공품(10.8%) 모두 10% 이상 급등했다. 국산 쇠고기(2.7%)는 상대적으로 덜 오른 편이지만 원래 비싼 가격 탓에 체감물가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다.


당분간은 이런 상황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전방위적 식재료값 상승을 단기간에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 올해도 전 세계에서 가뭄이 계속되면서 농산물 작황이 좋지 않다. 수입 의존도가 높은 비료값도 만만치 않아 양파, 감자 등 밭작물 가격이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 축산물 가격 상승을 부른 사료비, 가축비, 자가노동비 등 공급가를 떨어뜨릴 수 있는 방안을 찾기도 쉽지 않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급가 상승에서 시작된 인플레이션은 단순히 물가 상승에서 끝나지 않고 경기 침체로 이어지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 더욱 위험하다”고 말했다.

정부는 품목을 가리지 않고 치솟는 물가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물가 대책을 내놓은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또다시 개별 품목 대책을 꺼내들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달 말부터 다음 달 초까지 돼지고기 5만t에 대해 할당 관세(0%)를 적용키로 했다. 높은 관세로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대비 수입이 적었던 캐나다, 멕시코, 브라질산 돼지고기 수입을 유도하겠다는 취지다. 가공용 정육은 도매가 기준 ㎏당 미국산 5000원, 유럽산 4000원대인데, 할당 관세가 적용되면 브라질산이 3500원대에 가격이 책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농협중앙회도 물가 안정 등을 위해 3600억원 규모의 지원책을 가동한다고 이날 밝혔다. 소비자물가 안정에만 1480억원을 투입한다. 추석 성수기까지 전국 2215곳의 하나로마트에서 식용유, 돼지고기 등 물가 급등 100대 품목 할인 판매를 실시한다. 수박 등 제철 농산물의 경우 연말까지 최대 70% 할인 행사를 이어간다. 축산물 가격 안정을 위해서는 1080억원을 편성했다. 외부 요인 때문에 급등한 사료 가격 부담을 덜어주는 데 쓰일 예정이다.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은 “물가 상승으로 인한 국민 어려움 극복에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신준섭 심희정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