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어청도, 바다 향해 빛 쏘아 보내는 빨간 모자 쓴 하얀 등대

입력 2022-06-08 20:55
어청도 서쪽 끝자락 깎아지른 절벽 위에 고고하게 빛나는 하얀 등대. 매일 밤 12초마다 한 번씩 42㎞ 해상까지 밝은 빛을 바다로 쏘아 보내 선박의 안전을 지킨다. 등대를 둘러싼 나지막한 돌담이 더해져 동화 속에 나오는 숲속의 집을 연상시킨다.

전북 군산시 옥도면 고군산군도에 딸린 섬 어청도(於靑島)는 군산항에서 서쪽으로 72㎞ 떨어진 절해고도(絶海孤島)다. 뱃길로 2시간 이상을 달려야 닿는다. ‘멀고 가기 어려운’ 어청도에 가야 할 이유가 최근 몇 가지 생겼다. 지난해 말 노후 여객선을 대체한 새 여객선이 투입돼 접근이 쉬워졌고 올해 초부터 뱃삯이 절반으로 낮아졌다. 여기에 어청도를 대표하는 등대가 ‘6월의 등대’에 뽑혀 여행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어청도는 물 맑기가 거울 같아 이름을 얻었다. 지명이 어조사 ‘어’자로 시작하는 게 특이하다. ‘청’도 맑을 청(淸)이 아닌 푸를 청(靑)이다. 여기엔 유래가 있다. 어청도는 중국 산둥반도와 약 300㎞ 거리로 중국의 개 짖는 소리와 닭 우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을 정도로 가깝다. 기원전 202년쯤 중국의 한나라 고조가 초나라 항우를 물리치고 천하를 통일한 뒤 패왕 항우가 자결하자 재상 전횡이 군사 500명을 거느리고 망명길에 올랐다. 서해를 떠다니던 중 3개월 만에 이 섬을 발견했다. 바다에는 안개가 끼어 있었는데 갑자기 푸른 산 하나가 우뚝 나타났다고 한다. 전횡이 이곳에 배를 멈추도록 명령하고 어청도라 이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감탄으로 시작되는 푸른 섬’이다.

어청도 공치산 기슭에서 내려다본 한반도 지형.

어청도는 ‘하얀 등대’를 먼저 떠올리게 한다. 등대는 일제강점기인 1912년 3월 대륙진출의 야망을 품은 일본의 전략적 목적에 의해 건설됐다. 인천 팔미도 등대에 이어 두 번째다. 매일 밤 12초마다 한 번씩 밝은 빛을 바다로 쏘아 보내 선박의 안전을 지킨다.

등탑은 백색 원형 콘크리트 구조로 상부는 전통 한옥의 서까래 형상으로 재구성됐다. 상부 빨간 등롱과 하얀 등탑이 조화를 이루며 바다와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자태를 자랑한다. 등대 내부에는 원형 철제 계단과 접이식 철제 바닥판이 100여년 전에 만들어졌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본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등대를 둘러싼 나지막한 돌담이 더해져 동화에 나오는 숲속의 집을 보는 것 같다. 역사·문화·건축적 가치가 높아 2008년 국가등록문화재 제378호로 지정됐다.

섬 서쪽 끝자락 깎아지른 61m 절벽 위에 15.7m 높이로 세워진 등대는 고고하다. 특히 일몰 무렵 노을에 물들어가는 하늘빛과 하얀 등대가 만들어내는 풍경이 황홀하다. 해가 지고 나면 등대는 홀로 빛이 난다. 불빛은 멀리 42㎞ 해상까지 신호를 보낸다.

어청도에는 4개 코스로 구성된 ‘어청도 구불길’이 있다. 포구에서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등대까지 이르는 길은 1코스 ‘등대길’이다. 등대를 감상하고 난 뒤 되돌아 나와 팔각정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4코스 ‘전횡길’이다. 이 코스는 각종 공사로 인해 9월까지 폐쇄 중이다. 팔각정은 땀을 식히며 어청도 전경을 굽어볼 수 있는 전망 포인트다. ‘하트’ 조형물이 인증샷 명소다.

해당화가 곱게 핀 해변산책길.

왼쪽 산등성이를 따라가면 3코스 ‘안산넘길’이다. 이 길을 걸으면 어청도와 주변 바다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오른쪽에 ㄷ자 모양으로 들어선 포구가 아늑하다. 기상이 악화되면 피항하는 곳이다. 왼쪽으로는 충남 보령시의 외연열도가 걷는 내내 따라온다. 공치산 정상(115.9m)을 넘어 멀리 안산과 검산봉 쪽을 보면 푸른 바다에 안긴 한반도 모습이 나온다. 아침 일찍 2코스 ‘해변산책길’을 따라 안산과 검산봉에 오르면 일출을 감상할 수 있다. 해변산책로 끝에서 충북 단양의 도담삼봉처럼 우뚝한 ‘어청삼봉’을 만난다. ‘농배’라는 암초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섬과 한 몸이 됐다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자연석 기단 위 원추형 봉수대.

4코스 ‘전횡길’은 선착장 앞에서 나무데크 계단을 통해 오를 수 있다. 주봉인 당산(198m) 정상에 남아 있는 어고려시대 봉수대까지 갈 수 있다. 자연석으로 된 낮은 기단 위에 2층의 원추형 모습을 지닌 봉수대는 서해를 통해 침입하는 적을 알리기 위한 통신시설이다. 고봉산 봉수대와 신호를 주고받았다. 돌로 만든 7층 계단을 걸어 올라갈 수 있다. 봉수대는 조선 숙종 3년(1677)에 폐지됐다.

전횡을 기리는 치동묘.

마을 중앙에 전횡을 기리는 치동묘가 있다. 2m 높이의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대문에는 태극 문양이 새겨져 있다. 인근에 1925년 개교해 2021년 폐교된 어청도초등학교도 남아 있다. 운동장 앞에는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 이승복 어린이 동상, 높이가 10m도 넘는 느티나무가 있다. 학교의 명물은 ‘X’자형으로 자라는 향나무다. 두 그루가 마치 교문처럼 좌우로 뻗어 가지가 서로 부둥켜안은 듯한 모습이어서 ‘사랑나무’로 불린다.

‘사랑나무’로 불리는 어청도초등학교 X자형 향나무.

여행메모
평일 한번·주말 두번 편도 2시간
민박·펜션 숙박… 우럭찜 별미

지난해 11월 군산~어청도 항로에 새 여객선 ‘어청카훼리호’가 취항했다. 승객 194명·중형차 4대를 운송할 수 있다. 군산연안여객터미널에서 평일에는 하루 한번(군산항 오전 9시 출발), 주말에는 두 번(군산항 오전 9시, 오후 1시 출발) 오간다. 스마트폰 앱 ‘가보고 싶은 섬’을 통해 승선권을 예매할 수 있다.

여객선터미널 주차장 요금은 하루 기준 5000원이다. 배삯은 반값으로 할인돼 갈 때는 1만3000원, 올 때는 1만2600원이다. 터미널 이용료나 차량 운송요금은 할인되지 않는다. 신분증은 필수다. 어청도까지는 2시간 남짓 소요된다.

어청도에는 대중 교통편이 없다. 섬이 그리 크지 않아 천천히 걸어서 4~5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다. 선착장에서 어청도 등대까지는 2㎞, 걸어서 30분쯤 걸린다.

어청도에서 숙박은 민박이나 펜션을 이용하면 된다. 어청도 주변 바다에는 우럭 돌돔 참돔 감성돔 방어 농어 놀래기 등이 잡힌다. 우럭찜은 어청도 별미로 꼽힌다.



어청도(군산)=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