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블루스’라는 드라마는 고집스럽다. 뉴스가 될 리 없는 평범한 이들의 삶을 작심한 듯 깊숙이 파고들어 보여준다. 그런 앵글이 두드러진 것은 ‘영희’의 에피소드에서였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영희가 그려내는 그림의 정체를 드라마는 필사적으로 감추며 마지막 공개 순간까지 뜸을 들였다. 마치 “너희가 발달장애를 아느냐”고 묻는 듯이.
영희를 연기한 정은혜씨는 캐리커처 작가이면서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발달장애인이기도 하다. 은혜씨의 어머니가 국민일보 인터뷰(7일자 1·8면)에서 꺼낸 이야기는 이 작품의 메시지와 닿아 있었다. 그는 딸의 그림을 처음 봤던 때를 말했다. “2013년 2월 23일이었어요. 은혜가 스물네 살 때. 그 그림을 제가 한참 봤어요. 은혜를 한번 쳐다보고 그림을 한번 보고. 진짜? 네가? 하면서.” 어머니는 “결국 나도 은혜를 장애인으로만 봤던 것”이라고 고백했다. 장애가 있는 딸을 편견 없이 키운다고 자부했던 어머니에게 그 그림은 “은혜를 잘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드라마도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장애인’이라고 뭉뚱그려 말하는 사람들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우리 사회가 그들을 위한다며 택한 제도와 정책은 정말 그들이 원하는 것인가. 장애인은 이럴 것이다, 여기까지일 것이다, 하며 지레 넘겨짚은 것은 아닌가.
은혜씨는 서른두 살이 됐다. 어머니는 서른두 해를 장애인 딸과 함께했다. 강산이 세 번 바뀌었을 그 세월 동안 “국가가 스스로 바뀐 건 하나도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장애인이 있는 가정은 온 가족이 장애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현실을 30년 동안 직접 체험한 이의 말이다. 제도와 정책이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을 규정하기 때문인데, 그런 제도와 정책은 우리의 인식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한국 사회는 장애인의 삶을 규정하는 숱한 제도를 두고 있다. 그것이 미흡하다면 문제는 공동체 구성원의 인식에 있다.
장애인에게 불편한 사회는 장애가 없는 이에게도 우호적일 리 없다. 장애라는 단순한 차이를 관용하지 않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미묘한 격차를 불편 없이 대해주겠는가. 은혜씨와 어머니의 이야기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넘어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사회의 친절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은혜씨가 느끼는 삶의 만족도가 높아질 때 내 삶도 더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모녀의 30년 세월이 웅변한다. 장애인을 대하는 정부의 시선도 달라질 때가 됐다. 배려나 시혜의 낡은 관점은 이제 넘어서야 한다.
[사설] 발달장애인 은혜씨 이야기, 우리가 곱씹어야 할 이유
입력 2022-06-08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