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천 제방을 걷다 왕벚나무 아래 개망초 군락이 말라가는 모습을 보았다. 개망초는 본디 북아메리카가 고향인데, 120여년 전 미국산 철도침목에 묻혀 들어와 철로를 따라 단숨에 전국으로 퍼진 대표적 귀화식물이다. 당시 을사늑약 등 외세 침략과 국운 쇠락 시기가 맞물리며 망국의 풀(亡草)이라는 이름도 얻었지만, 계란꽃이라고 불리듯 화사한 빛깔로 나름 사랑받는 잡초다. 이 생명력 강한 잡초가 지독한 봄 가뭄을 어쩌지 못해 서서히 말라가고 있었다. 5월 강수량이 5.8㎜로 평년 대비 20분의 1 수준의 극심한 가뭄 상태다. 지난 주말 단비에 남부와 강원 영동은 일부 해갈됐다지만 수도권은 여전하다. 농촌이 우선 걱정이지만 도시의 공원과 숲도 고통이 깊다.
특히 작년과 올해 심은 나무들이 먼저 피해를 입었다. 충분히 뿌리를 내리지 못한 까닭이다. 물도 주고 물주머니도 달곤 하지만 주변 대지까지 흠뻑 적실 충분한 비가 아니면 한계가 크다. 상황이 이러하니 돈 주고 물차를 부르려 해도 요즘 야간에 택시 잡기와 비슷하다. 가로수로 심긴 마로니에, 메타세쿼이아, 플라타너스 등 오래되고 큰 나무들도 중간중간 약한 녀석들이 선택적으로 삶을 멈추는데, 이건 정말 속수무책이다. 그뿐인가. 나무는 눈에라도 보이지, 건조에 약한 꽃은 아예 싹도 못 터 누런 맨땅이다.
겨울 가뭄으로 산에 눈이 없어 3월 초 울진 산불이, 긴 봄 가뭄으로 6월 초 밀양 산불이 발생했다. 둘 다 이례적이다. 공원과 산은 통상 가장 건조한 4월이 산불 대비 핵심 기간이다. 3월엔 잔설이 남아, 4월 말부터는 해마다 슈퍼컴퓨터를 애먹이는 게릴라성 봄비로 봄철 산불 위기에서 벗어나곤 했다. 기후위기에서 파생됐을 이 이례적 상황들의 반복이 ‘뉴노멀’인데, 일종의 철없음이다. 꼭지만 돌리면 수돗물이 콸콸 나오고 자동차와 실내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는 도시민은 체감하기 어렵다. 자주 공원과 숲을 걷고 자연을 만나 철을 익혀야 하는 까닭이다.
온수진 양천구 공원녹지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