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지하철역 이름 팝니다

입력 2022-06-07 04:11

스페인 마드리드 도심의 ‘솔 광장 역’은 2012년 ‘솔 갤럭시 노트 역’으로 불렸다. 이듬해는 ‘보다폰 솔 역’이 됐다. 삼성전자에 이어 다국적 통신사 보다폰이 역 이름을 샀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 지하철 애틀랜틱 애비뉴역 이름은 2009년 영국 금융기업인 바클리즈에 연간 20만 달러(약 2억5000만원)에 팔렸다. 역 이름 뒤에 ‘바클리즈 센터’가 붙었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에서 시행 중인 역명 병기 사업은 우리나라에는 2016년 시작됐다.

올해 1월 서울지하철 을지로3가역 이름이 신한카드에 팔렸다. 낙찰가는 역대 최대인 3년간 8억7000만원이다. “을지로3가, 신한카드역입니다”라는 안내 방송을 듣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월 300만명 이상으로, 홍보 효과가 확실하다고 신한카드는 분석한다. 거액을 들여 역 이름을 산 이유다. 을지로3가역 다음으로 비싼 역은 역삼역(센터필드·7억5000만원), 을지로4가역(BC카드·7억원)이다.

서울교통공사가 서울지하철 50개 역의 이름을 판매한다. 감정평가액이 가장 비싼 곳은 강남역으로 8억7598만원이다. 이어 시청역 7억638만원, 건대입구역 6억4929만원이다. 7일부터 서류접수를 시작해 공개경쟁 입찰 형태로 이뤄진다. 감정평가액 이상을 써낸 사업자 가운데 최고가를 써낸 사업자가 낙찰받는 방식이다. 조건은 더 있다. 사업체 위치가 해당 역에서 1㎞ 안에 있어야 한다. 유흥업 고리대부업 사행산업처럼 공공질서와 미풍양속을 훼손할 우려가 있는 기업은 안 된다. 홍보 성격이 너무 짙어도 곤란하다. 2020년 교육기업 에듀윌이 노량진역 이름을 사려고 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뜻을 접은 건 그런 사례다.

교통공사가 역명 병기 사업을 추진하는 것은 재정난 극복을 위해서다. 매년 1조원 안팎의 적자가 나는데 이를 조금이라도 만회하겠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시내버스 400여개 정류장에도 이를 추진 중이다. 공공의 공간인 지하철역에 사기업체 이름을 병기하는 걸 어떻게 봐야 할까. 적자는 보전해야겠지만 공공성을 훼손한다는 논란이 있음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