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개정안이 잇달아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지난달 말과 이달 초 두 건의 개정안을 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남 양산 사저 앞 시위를 막기 위한 개정안이다. 한병도 의원 등은 집회 또는 시위 주최자가 비방 목적으로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을 주는 행위 등을 금지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청래 의원 등은 집회·시위 금지 장소에 전직 대통령 사저를 포함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집시법 제11조는 대통령 관저와 법원 등을 집회·시위 금지 장소로 규정하고 있는데, 전직 대통령 사저를 추가한 것이다.
국민의힘 구자근 의원 등도 지난 4월 집회와 시위 금지 장소에 대통령 집무실을 추가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집시법 개정이 특정인을 위한 개정이 돼서는 곤란하다. 좋은 의도와 달리 입법권 남용이라는 오해를 살 수 있다. 2017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 논현동 사저 앞에서 몇 개월 동안 시위가 벌어졌을 당시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이를 격려하고 지지 발언을 했다. 그때와 지금이 다르다고 말하는 것은 내로남불이다.
다만 집시법 개정을 깊이 있게 검토할 시점이 됐다는 주장에는 공감한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적인 가치이자 권리다. 특히 우리나라는 오랜 군사독재와 권위주의 시절을 경험했다. 집회·시위 제한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집회의 자유(제21조)와 마찬가지로 개인의 행복추구권(제10조)과 쾌적한 환경권(제35조), 인간답게 생활할 권리(제34조)도 헌법적 권리다. 어느 순간 대한민국은 상식을 벗어난 집회·시위로 일반 시민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나라로 변하고 있다. 웬만한 기업 본사나 CEO 집 앞에는 매일 집회가 열리고 투쟁가와 장송곡이 흘러나온다. 기업만의 문제도 아니다.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 등은 지난해 집회 금지 장소에 아파트 출입구를 포함하는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아파트 주민들이 집회와 시위에 얼마나 시달렸으면 이런 개정안까지 나왔겠는가.
퇴임 대통령의 평온한 일상이 방해받지 않기를 바란다. 동시에 일반 국민의 평온한 삶도 존중받아야 한다. 집회·시위의 자유와 개인의 평온한 삶이 함께 충족될 수 있는 균형을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 법 개정만으로는 모든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집회·시위 문화는 그 나라 민주주의 수준을 보여주는 척도다. 저주와 욕설, 확성기와 천막, 우격다짐이 난무하는 집회 시위 문화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