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지방공기업에 다니는 A씨는 최근 법률사무소를 찾았다.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 직후였다. 그는 정년유지형 임금피크제를 적용받고 있는 자신의 상황이 이번 대법원 판결 사례와 비슷한지 문의했다.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무효 판결로 일선 사업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노조 측에 관련 문의가 빗발치고 있고, 기업 노조는 임금피크제 개선·폐지를 요구하는 움직임을 보인다. 사측 역시 대응 팀을 꾸리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6일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공공연맹)에 따르면 대법원 판결 이후 ‘우리 사업장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현장 노조의 문의가 상급단체에 쇄도하고 있다. 문의 전화가 하루에 5건을 넘는 실정이라고 한다. 공공연맹 관계자는 “현재 전 사업장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진행 중이다. 임금피크제 도입 이후 직무조정·노동시간 단축 등의 조치 없이 임금만 깎았다는 사업장도 있어서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몇몇 기업의 노조는 임금피크제 폐지를 외치고 나섰다. SK하이닉스 사무직 노조는 최근 임단협 요구안에 임금피크제 폐지를 넣었다. 현대자동차 노조도 만 59세에 임금을 동결하고, 60세에 기본급의 10%를 삭감하는 임금피크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을 단체교섭 요구안에 포함했다.
대법원은 지난달 26일 합리적 이유 없이 연령만을 기준으로 직원 임금을 깎는 임금피크제는 고령자고용법을 위반한 것으로 무효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 사건의 계기가 된 건 임금피크제 중에서도 정년유지형이다. 임금피크제는 ‘정년유지형’ ‘정년연장형’ ‘재고용형’ ‘근로시간 단축형’의 네 가지로 나뉜다. 이 가운데 정년유지형은 정년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일정 연령 이상 근로자의 임금을 정년 전까지 일정 기간 삭감하는 방식이다.
기업들은 ‘판결 후폭풍’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최근 30대 기업의 인사·고용 담당 부서장을 모아 회의를 했더니, 대다수 기업들이 단체교섭에서 임금피크제 폐지를 둘러싼 노사 갈등과 소송에 따른 혼란을 우려했다. 다만 대법원 판결은 정년연장형과 관련 없을 뿐 아니라 정년유지형 중에서도 예외적 사례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가 없을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실제로 30대 기업 가운데 95.7%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들이 임금피크제를 시행하면서 임금 삭감에 걸맞은 업무량과 업무강도 저감이 있었는지 다시 보고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판단한다”면서 “임금피크제가 고용보장이나 정년연장을 위해 노사 합의로 도입한 제도인 만큼 소송을 한다고 해도 불리할 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