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숫자에는 예민하면서 작은 숫자엔 둔감한 탓일까. 스멀스멀 다가오는 걸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그날, 그 식당에서, 그걸 보기 전까지는. 며칠 전 아내와 간송미술관을 들른 뒤 서울 성북동 어디쯤에서 시장기 달랠 곳을 찾았다. 칼국수 두 그릇을 시켰는데 양이 넉넉하고 맛도 괜찮았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꽤 유명한 곳이었다. 불과 1주일 전 올린 게시물에는 메뉴판 사진도 있었다. ‘칼국수 8000원’이라고 선명하게 적혀 있는 사진. 고개를 들어 벽에 붙은 메뉴판을 보니 숫자 8이 있던 자리에 0을 덧댔고, ‘칼국수’ 글자 바로 뒤에 1을 써넣었다. 안 오르는 게 없는데 오죽했을까 싶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손해를 본 느낌이 들었다. 쪼잔한 마음을 혼내듯 아내가 말을 건넸다. “물가 오르는 건 다 같을 텐데. 왜 서민만 힘들까.”
인플레이션은 없는 이에게 더 가혹하다. 흔히 ‘인플레이션은 저소득층 호주머니를 털어 고소득층 지갑을 채운다’고 한다. 두부 한 모, 김밥 한 줄 값이 올라도 부자에겐 충격이 거의 없다. 부자들은 부동산 같은 실물자산을 쥐고 있어 화폐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을 보전받을 수 있다. 인플레이션의 다른 얼굴은 물가 상승과 실질임금 감소로 가처분소득을 쪼그라들게 만드는 ‘스크루플레이션(screwflation)’이다. 나선형 계단을 하나씩 밟아 내려가 경기 침체에 닿게 한다. 그래서 윤석열 대통령은 “경제 위기” “태풍의 권역에 들어가 있다”고 경계한다. 독일 중앙은행 분데스방크의 총재인 요아힘 나겔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자극하는 3가지로 탈세계화, 탈탄소, 인구를 지목했다.
현재의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풀린 막대한 규모의 유동성, 엔데믹 전환에 따른 소비 폭발을 방아쇠로 삼았다. 여기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불을 지폈고,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이 기름을 부었다. 다양한 색깔의 실들이 얽히고설켜 실마리를 잡을 수 없는 실타래처럼 보인다. 다만, 실타래를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은 있다. 공급망 대란, 공급 리스크라고 불리는 그것이다. 자동차를 사고 싶어 신차를 주문하면 최소 1년을 기다려야 한다. 반도체 등 부품이 부족하고, 철강 등 원자재값은 치솟았다. 세계 곳곳에서 공장이 잘 돌아가지 않고, 운송도 쉽지 않다. 트럭, 상선이 부족하고 운전하는 사람, 짐을 내리고 올릴 인력도 부족하다. 이런 건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속은 겉보기와 다르다. 공급망 대란의 이면에는 탈세계화 혹은 세계 경제의 블록화가 자리한다. 지난 30년간 지구촌은 세계화라는 달콤함을 만끽했다. 저렴하고 풍부한 노동력을 지닌 중국은 세계의 공장으로 성장했다. ‘메이드 인 차이나’ 딱지를 붙인 값싼 물건들은 각국으로 수출되면서 디플레이션을 동반했다. 여기에 기대어 미국은 금융과 첨단산업에 힘을 쏟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공조는 깨졌다. 세계 경제는 여러 조각으로 쪼개지고, ‘저물가 고성장’이라는 익숙함은 소멸하는 중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끝나면 인플레이션의 본질은 고개를 내밀 것이다. 익숙했던 달콤함과 결별하고 고물가, 저성장의 고통이 길어질 수 있다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출구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탈세계화는 탈중앙화와 맞물려 새로운 세계화로 진화할 가능성을 보인다. 국가 경제의 장벽 허물기가 세계화의 첫 번째 버전이라면, 디지털(메타버스·가상화폐·모바일·인공지능 등)로 무장한 개인들의 연대와 교류는 두 번째 버전일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물가 안정이라는 ‘나무’만 볼 게 아니라, 미래를 만드는 밑그림 그리기라는 ‘숲’도 봐야 한다.
김찬희 산업부장 chkim@kmib.co.kr